대장엔 세균 득시글 그러나 좋은일 한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1.29 10:25:13

梨大 이원재 교수 연구팀… 세균·항균단백질 공생 밝혀
세균과 항균단백질 질서 깨지면 초파리 장에서 염증… 죽기까지

[조선일보 제공] 세균은 통상 인체에 해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실제로 우리 몸 속의 면역시스템을 구성하는 항균 단백질은 세균을 보는 족족 죽이며 멸균처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장(大腸)에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보다 더 많은 100조개의 세균이 항균 단백질과 공생하고 있다. 게다가 대장의 세균은 신체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이기까지 하다. 우리 신체에 이렇게 많은 세균이 활동하는 곳은 대장이 거의 유일하다. 위장이나 소장에도 소수의 세균이 있긴 하지만, 대장처럼 많지 않다. 대장 내 세균은 어떻게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대장의 세균은 비만에도 관여해

우리 몸의 건강을 지켜 주는 면역체계는 미시적으로 보면 항균 단백질과 세균과의 싸움이다. 항균 단백질은 세균을 만나면 세균의 세포막을 파괴해 세균을 죽인다. 하지만 대장 내 세균은 예외다.



이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2006년 미국 워싱턴 대학의 고든(Gordon) 박사팀은 사람의 체중에 따라 대장 내에 존재하는 특정 세균의 양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장 내에 존재하는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라는 이름의 세균은 정상 체중인 사람의 경우 전체 대장내 세균의 30%를 차지했지만, 비만인 사람들에서는 불과 3%만 발견됐다. 대장 내 특정 세균의 수가 비만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다.

대장 내 세균이 대장 세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대장 세포는 많이 죽고 또 지속적으로 새로 생겨난다. 그러기 위해 세포는 증식을 통해 계속 분화해야 한다. 분화는 사람으로 치면 태어나서 유년기·청년기를 거쳐 노년기로 접어들어 죽어가는 과정이다. 만약 분화 없이 증식만 일어난다면 세포는 암으로 발전할 공산이 높다. 대장의 세균은 대장세포가 분화해가는 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균은 또 대장의 기본 역할인 음식물의 소화, 흡수에도 관여한다. 음식물을 대장이 흡수하기 좋은 형태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장 내 세균 판도가 깨지면 병이 생긴다

대장에서 항균 단백질과 세균이 공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항균 단백질의 숫자가 세균의 양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대장 내에서 항균 단백질이 늘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세계 최초로 이 과정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원재(40) 교수와 유지환(37) 박사, 김성희(33·박사과정)씨로 구성된 연구팀은 항균 단백질을 억제하는 코달(caudal)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지난 2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대장 내 코달 유전자가 항균 단백질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막아 대장에서 세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화여대 이원재 교수팀이 초파리의 유전자 조작으로 대장의 세균과 항균단백질의 공생관계를 규명했다. /이원재 교수 제공

 
연구팀은 코달 유전자가 어떻게 항균 단백질의 증식을 억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코달 유전자를 지운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 교수팀은 유전자 조작으로 코달 유전자가 없는 초파리를 얻은 뒤 이 초파리의 대장 내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코달 유전자가 없는 초파리의 대장에서는 세균 분포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항균 단백질이 활동하면서 기존에 대장 내 다수 세균이었던 A911이 죽어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고, 이 틈에 소수 세균인 G707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 교수는 "다수 세력인 A911 세균이 소수인 G707 세균을 억제하는 대장 내 세균 간 질서가 깨지면서 초파리 대장 내에서는 염증이 발생했고 일부 초파리는 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결국 장염의 원인은 대장 내 세균의 조화로운 질서가 깨지면서 발생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로 확인됐다. 대장 내 세균의 종류는 500~1000가지. 각 세균이 일정 수를 유지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언스 편집진은 이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높이 평가해 별도의 논평을 실었다. 매사추세츠대 의대 실버만(Silverman) 교수는 "대장 내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항균 단백질이 너무 많아지면 세균의 세력 판도가 깨져서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보여준 획기적인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손톱 이상 신호 그냥 넘기지 마세요!
☞변비 증상 오래간다고 다 대장암 아니다
☞심장에 좋은 브로콜리, 끓이면 ''도루묵''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