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아사히, '일왕에 속죄 맡긴 채 과거사 잊은 日정치권' 비판

연합뉴스 기자I 2019.05.06 14:00:49

"日정계, 역사 인식 얼버무린 채 ''미래지향'' 강조 풍조 퍼져"
"레이와 시작됐지만, 헤이세이는커녕 쇼와도 아직 안 끝나" 지적도

(도쿄=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상왕)이 재위 시 해왔던 ‘위령(慰靈)의 여행’ 뒤에 숨은 일본의 정치권이 ‘속죄’ 의무를 일왕에 떠넘긴 채 과거를 잊고 있다는 지적이 일본 주요 언론매체에서 제기됐다.

이는 일왕과 ‘천황제’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주류 언론에서 제기한 지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6일 아사히신문은 일왕을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한 일본 헌법 1조에 대한 기획 기사를 ‘가해의 역사 마주 보는 것은 누구’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자위대 사열식 참석한 日아베 총리작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사이타마 현의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사히신문이 이 기사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키히토 전 일왕의 ‘위령의 여행’ 행보와, 이와 반대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자세였다.

신문은 “아키히토 ‘천황(일왕)’이 몇번이나 전쟁 지역을 방문해 과거를 마주 봤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는 역사 인식을 얼버무리며 ‘미래 지향’을 강조하는 풍조가 퍼졌다”고 지적했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일왕 재위 시 태평양전쟁의 국내외 격전지 등을 돌면서 희생자를 추모했다. 패전 70주년인 지난 2015년 8월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는 과거사에 대해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런 행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정작 과거에 대해 사죄할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을 덮는다는 비판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왕의 이런 행보에 대해 “정치적 권능을 갖지 않은 ‘상징 천황’으로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것으로 보였다”면서 “반면 아베 정권은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역대 총리가 했던 가해 책임이나 ‘깊은 반성’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의 반성을 촉구합니다’(서울=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 137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사죄와 반성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헌법에 따라 일왕의 직무는 국사 행위를 행하는 것에 한정돼 있으며(헌법 7조), 국정에 대한 권한을 전혀 갖지 않는다(헌법 4조). 이런 가운데 일왕이 과거에 대해 “반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행보를 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사히는 “정치가 본래 해야 할 속죄를 ‘천황’에게 맡기며 안심하고 과거를 잊은 것 같다”며 “어떻게 국민주권을 실현할지에 대한 긴장감은 엿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지적은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지난 3일 메이지(明治)대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도 나왔다.

아사히에 따르면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68)는 이 강연에서 “(아키히토 전 일왕이) 전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은 채 쇼와(昭和) ‘천황’이 남긴 속죄의 여행을 해온 것 아닐까?”라고 물으며 ‘위령의 여행’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밝혔다.

그는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가 시작됐지만 (직전 연호인) 헤이세이(平成·1989~2019)가 끝난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쇼와(昭和·1926∼1989)도 끝나지 않았다”며 과거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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