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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다 보면 아직 이식 대기자로 등록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이식이 필요할 것 같은 환자들을 알게 된다. 외래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으며 힘겹게 자신의 심장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환자도 그런 분이었다. 10여 년 동안 우리 병원 심부전 외래를 다녔다. 심장 기능은 오래전부터 심하게 떨어져 있었고, 치명적인 부정맥에 대비해 삽입형 제세동기(ICD)까지 가지고 있었다.
심장이식센터장님은 오랫동안 환자를 진료하면서 심장이식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그러나 심장이식은 심장 기능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시행하는 치료는 아니다. 현재의 심장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약물치료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큰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은 약물치료를 받으며 외래를 다닐 수 있었기에, 호흡곤란이 심해지거나 심부전이 더 이상 조절되지 않는 시점에 이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환자는 자신의 심장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왔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응급실로 왔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위기
환자는 갑자기 심해진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집 근처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당시 동맥혈가스검사에서 확인된 pH는 6.8이었다. 정상적인 혈액의 pH가 7.35~7.45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극심한 산증이었다.
심장이 제대로 혈액을 내보내지 못하면서 폐에는 물이 가득 찼다. 폐부종이 심해지자 산소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기관삽관을 통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는 그렇게 인공호흡기를 단 채 우리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혈액의 산성도는 여전히 심하게 낮았고, 혈압도 불안정했다. 심장이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니 여러 장기의 기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중환자실에서는 강심제와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혈압을 유지하려 애썼다. 폐부종을 조절하고 산증을 교정하기 위한 치료도 계속되었다.집중적인 치료 끝에 환자의 상태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승압제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약물의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을 뿐, 환자 자신의 심장이 충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 팀은 에크모(ECMO)를 고민했다.
에크모는 심장과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체외에서 혈액순환과 산소 공급을 보조하는 장치다. 심장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이식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중요한 치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에크모를 삽입하는 것 역시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출혈과 혈전, 감염, 혈관 합병증의 위험이 있고, 장기간 유지할수록 환자의 전신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혈압과 젖산 수치, 장기 기능의 변화를 계속 확인했다. 다행히 집중적인 치료에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혈압이 안정되었고, 혈액검사 수치도 나아졌다. 결국 에크모는 삽입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상태가 나빠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중환자실을 오가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환자는 이제 자신의 심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낯익은 이름, 뜻밖의 기록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을 준비하기 위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 시스템에 접속했다. 환자의 정보를 입력하는데 뜻밖의 기록이 확인되었다. 이 환자에게는 과거 이식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무언가를 잘못 입력한 줄 알았다.
다시 확인해 보니 환자는 이미 두 차례 각막이식을 받은 사람이었다. 10여 년 전 한쪽 눈에 뇌사 기증자의 각막을 이식받았고, 이후 반대편 눈에도 문제가 생겨 몇 년 뒤 다시 각막이식을 받았다.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심장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수많은 이식 환자를 만났지만 두 번의 각막이식을 받은 뒤 다시 심장이식을 준비하는 환자는 흔하지 않았다.
KONOS에 문의해 필요한 등록 절차를 확인하고 새로운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을 진행했다. 이제 환자는 세 번째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두 번은 세상을 보기 위한 이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이식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세 번째 선물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 예상하지 못했던 기증자의 연락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뇌사 기증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왔다. 기증자의 나이는 비교적 많았다. 심장이식에서 기증자의 나이는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젊고 건강한 기증자의 심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식 후 심장 기능과 장기적인 예후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기증자의 심장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을 수 있어 이식 여부를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실제로 이번 기증자의 심장은 앞선 순위의 여러 병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령이라는 점 때문에 이른바 ‘마지널 도너(marginal donor)’, 즉 상대적으로 위험 요인이 있는 기증자로 판단된 것이다. 그렇게 기증자의 심장이 우리 병원 환자에게까지 제안되었다.
나는 기증자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우리 팀은 특히나 심장 이식센터장님은 오랜 경험으로 기증자의 나이만 보고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심장 기능과 검사 결과, 기증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분명 위험 요인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이식할 수 없는 심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검토 결과 기증자의 심장은 이식 후 충분히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문제는 오히려 우리 환자였다.
◇ 의식을 확인하지 못한 채 내려야 했던 결정
환자는 여전히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전원 당시 pH가 6.8까지 떨어졌던 환자였다. 그 정도의 심한 산증을 경험한 환자라면 뇌를 비롯한 여러 장기에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심장이식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증자의 심장이 아무리 좋아도 환자가 회복할 수 없는 뇌손상을 입었다면 이식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센터장님은 이 부분을 가장 신중하게 살폈다.
다행히 환자는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가슴압박을 시행해야 할 정도의 순환정지가 발생했던 환자는 아니었다. 이번 위기는 심한 심부전으로 폐부종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발생한 호흡부전이 주된 원인으로 판단되었다.
물론 심정지가 없었다고 해서 저산소성 뇌손상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의식은 진정제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뇌 CT를 시행했다. 다행히 영상에서 뚜렷한 급성 이상 소견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뇌 기능이 완전히 정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제를 중단하고 환자가 명확하게 의식을 회복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그럴 만큼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증자의 심장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환자를 10여 년 동안 진료해 온 이식센터장님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심부전으로 치료받았지만 외래를 다니며 버텨왔고,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폐부종으로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점도 중요했다. 뇌CT에서 명백한 이상이 없고, 심정지나 심폐소생술의 병력이 없으며, 현재의 불안정한 상태가 심부전 악화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무엇보다 이식을 하지 않는다면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의료진의 고민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식은 단순히 수술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기증자의 소중한 심장을 어떤 환자에게 이식할 것인지, 그 환자가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이식 후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까지 생각해야 하는 결정이다.
이번에는 두 가지 불확실성이 동시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기증자의 심장.
그리고 아직 의식 상태를 완전히 확인하지 못한 수혜자.
하지만 기증자의 심장은 의학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고, 수혜자 역시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충분한 논의 끝에 우리 팀은 기증자의 심장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완벽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증자의 심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이식을 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다시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다른 병원들이 거절한 심장이 우리 환자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었다.
◇ 경험이 필요한 순간
심장이식은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식이 결정되면 그때부터 여러 의료진이 동시에 움직인다. 심장 적출팀은 기증자가 있는 병원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심장수술팀은 수혜자의 수술을 준비한다. 마취과와 중환자실 의료진도 환자의 상태를 다시 확인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기증자와 수혜자의 정보를 확인하고, 수술 일정과 이동 과정, 이식에 필요한 여러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조율한다.
이식 코디네이터의 일은 때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확인 하나가 늦어져도 전체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에는 더욱 긴장되었다.
수혜자는 이미 위태로운 상태였다. 승압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고, 폐 상태도 좋지 않았다.
기증자의 심장 역시 고령이라는 위험 요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의료진은 각자의 자리에서 침착하게 움직였다. 우리 병원은 오랫동안 중증 심부전 환자를 치료하고 심장이식과 기계순환보조 치료를 시행해 온 경험이 있었다.
이런 경험은 특히 어려운 환자를 만났을 때 큰 힘이 된다. 언제 기다리고 언제 개입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단순히 지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쌓아온 의료진의 경험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이번 환자도 그랬다.
에크모를 삽입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시간, 고령 기증자의 심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 의식 상태를 완전히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하기까지 어느 하나 쉬운 선택이 없었다.
그렇게 환자는 심장이식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새로운 심장은 환자의 가슴 안에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나도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직 회복 과정이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환자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 지방으로 가득했던 심장
이식 수술을 마친 뒤 환자의 원래 심장을 병리검사로 확인했다. 결과는 부정맥 유발성 심근병증(arrhythmogenic cardiomyopathy)이었다.
이 질환은 심장근육이 점차 손상되고 그 자리를 지방과 섬유조직이 대체하면서 심장 기능 저하와 심각한 부정맥을 일으킬 수 있는 심근병증이다. 환자의 심장 조직에는 광범위한 지방성 대체가 관찰되었다. 정상적인 심장근육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방조직이 광범위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래된 환자의 기록을 다시 떠올렸다.
10년 넘게 심한 심부전으로 치료받았던 시간.
삽입형 제세동기를 달고 살아야 했던 이유.
반복되는 부정맥과 점차 떨어지는 심장 기능.
그 모든 것들이 병리검사 결과와 연결되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것은 유전자검사 결과였다. 부정맥 유발성 심근병증은 유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심장근육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단백질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있으면 심장근육이 점차 손상되면서 심부전과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유전자검사에서 원인으로 확인할 만한 병적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유전자검사가 음성이라고 해서 유전적 원인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알려진 유전자만으로 모든 심근병증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병리검사에서 확인된 심장의 모습은 명확했다. 겉으로는 확장성 심근병증처럼 보였던 심장 안에서 실제로는 오랜 시간 심장근육의 소실과 지방·섬유조직으로의 대체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심장으로 환자는 얼마나 오랫동안 버텨왔을까.
우리에게는 병리검사 결과 한 장이었지만, 환자에게는 10여 년의 시간이 담긴 심장이었다. 그동안 멈추지 않고 뛰어준 심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그 역할을 다른 누군가의 심장이 이어받았다.
◇ 나만 보면 부정맥이 생기던 환자
이식 전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만날 때마다 이상한 일이 있었다. 환자는 진정제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내가 곁에 가면 유난히 부정맥이 자주 나타났다. 모니터에서 심실조기수축이 반복되면 나도 모르게 화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담당 간호사가 농담처럼 말했다.
“코디 선생님이 오시는 걸 알고 긴장하시나 봐요.”
나는 웃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내가 올 때마다 왜 이러시지?’
물론 실제로 내 존재 때문에 부정맥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장 자체가 매우 불안정했던 환자였고 부정맥 유발 심근병증이었으니 우연히 그런 상황이 반복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식 후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환자는 수술을 잘 견뎌냈고, 점차 의식을 회복했다. 인공호흡기를 이탈하고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상태도 좋아졌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섬망 증상이 나타났다. 내가 없을 때는 몸에 연결된 주사바늘이나 배액관을 빼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환자 곁에 가서 말을 걸면 비교적 얌전하게 의료진의 지시를 따랐다.
담당 간호사들이 다시 농담을 했다.
“이상하게 코디 선생님 말씀은 잘 들으시네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게요. 제 눈치를 보시는 건가요?”
이식 전에는 내가 나타나면 부정맥이 생기던 환자가 이식 후에는 내가 나타나면 조용해진다니.
환자와 나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환자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환자의 눈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 두 번의 각막이식, 그리고 세 번째 심장이식
환자의 한쪽 눈은 혼탁해 보였다.
알고 보니 환자는 두 차례 각막이식을 받았음에도 시력이 매우 좋지 않았다.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반대편 눈도 시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주 희미한 시력에 의지해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놀랐다. 두 번이나 각막이식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앞을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니.
심장이식 코디네이터인 나는 이식을 받으면 새로운 장기가 제 기능을 하고, 환자가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물론 심장이식도 수술로 모든 치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감염과 거부반응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각막이식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각막은 눈의 가장 앞쪽에 위치한 투명한 조직으로, 빛이 눈 안으로 들어오고 선명한 상을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손상된 각막을 건강한 기증자의 각막으로 바꾸면 시력이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각막이 잘 생착했다고 해서 반드시 시력이 충분히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망막이나 시신경 등 다른 눈의 구조에 문제가 있거나, 각막의 혼탁과 난시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면 시력 회복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식 후에도 오랜 기간 안약을 사용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때로는 거부반응이나 이식편의 기능 저하 때문에 다시 이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제야 생각했다.
‘각막이식의 세계도 참 어렵구나.’
나는 각막이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막연하게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렸다.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누군가의 기증으로 다시 세상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길가에 피어난 꽃을 발견하는 모습.
어쩌면 다른 어떤 이식보다 낭만적인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환자를 보면서 이식이 반드시 모든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두 번의 각막이식에도 환자의 세상은 여전히 희미했다. 그럼에도 그 작은 시야에 의지해 자신의 삶을 이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 번째 기증자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갈 시간을 얻었다.
◇ 세 사람의 기증자
심장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뇌사 기증자의 장기가 여러 환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자주 보게 된다.
심장, 폐, 간, 신장처럼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장기뿐 아니라 각막과 같은 조직도 기증될 수 있다. 각막은 다른 장기와 달리 혈관이 거의 없는 조직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부 면역학적 측면에서는 다른 장기이식과 차이가 있으며, 뇌사 기증자뿐 아니라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사후 기증자로부터도 기증받을 수 있다.
우리 병원에서 경험한 뇌사 기증 과정에서는 대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장기의 적출이 먼저 이루어지고, 각막은 그 이후에 채취되었다. 심장 적출팀은 비교적 일찍 수술을 마치고 이동하기 때문에 나는 각막 채취를 담당하는 의료진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한 사람의 기증이 어떤 환자에게는 심장이 되고, 또 다른 환자에게는 눈이 된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평생 만날 일도 없었던 사람들이 한 사람의 마지막 나눔으로 연결된다.
이 환자에게는 그런 인연이 세 번이나 찾아왔다.
첫 번째 기증자는 한쪽 눈에 각막을 남겨주었다.
두 번째 기증자는 다른 쪽 눈에 각막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기증자는 새로운 심장을 남겨주었다.
세 분의 기증자와 그 가족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특히 이번 심장 기증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병원에서 이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팀은 기증자의 상태와 환자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그 심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심장은 지금 환자의 가슴 안에서 뛰고 있다. 나는 이런 순간에 이식 의료진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장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 기증자가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의료진이 있어도 심장이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증자의 소중한 뜻이 실제로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의료진의 몫이다. 좋은 조건의 기증자와 안정된 수혜자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그런 기회만 찾아오지 않는다. 위험을 신중하게 평가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번 이식은 우리 팀이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느끼게 해준 사례였다.
기증자의 나이만으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판단, 수혜자의 회복 가능성을 끝까지 살폈던 과정, 그리고 수술과 중환자 치료를 이어간 의료진의 노력이 모여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작에는 자신의 심장을 기증한 한 사람과 가족의 결정이 있었다.
◇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선물이 되기를
환자는 이제 일반 병실에서 회복하고 있다. 그토록 위태로웠던 순간이 언제였나 싶을 만큼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pH가 6.8까지 떨어지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수많은 약물의 도움으로 겨우 혈압을 유지하던 환자였다. 에크모를 삽입해야 할지 고민했고,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환자가 새로운 심장을 가지고 병실에 누워 있다. 내가 다가가 말을 건네면 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기도 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내 얼굴을 선명하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을 주고받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이식 전에는 내가 나타나면 모니터에 부정맥이 나타나던 환자였다. 이제는 내가 나타나면 조금 얌전해지는 환자가 되었다. 그런 사소한 변화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환자는 세 명의 기증자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두 사람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한 사람은 그 세상에서 계속 살아갈 시간을 주었다. 어쩌면 환자는 앞으로도 작은 꽃이나 나비를 선명하게 보지 못할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또렷하게 알아보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심장으로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따뜻한 손을 잡고, 함께 식사를 하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하루가 세 번의 기증을 통해 비로소 이어진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이식 코디네이터로서 많은 환자의 수술 전후를 함께한다.
누군가에게는 기증자의 연락이 너무 늦게 오고, 누군가에게는 기다리던 연락이 끝내 오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어렵게 이식을 받고도 예상하지 못한 합병증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이식을 받고 병실로 돌아와 다시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과정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이번 환자 역시 운이 좋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끝까지 버텨준 환자,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찾았던 의료진,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심장을 나누어준 기증자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환자는 세 명의 기증자가 남긴 선물과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바란다. 이번 선물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선물이 되기를.
더 이상 새로운 장기를 기다려야 하는 아픔 없이, 지금의 심장으로 오래오래 살아가기를.
비록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보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기쁨과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깊이 느끼며 살아가기를. 그리고 언젠가 환자가 이식 후의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할 때, 나는 다시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지켜낸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심장박동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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