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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다섯 개의 멜로디 Op.35’(1920년)로 시작됐다. 첫 곡부터 불협 화성의 차가움과 서정적 선율의 따뜻함이 공존하는 작곡가 특유의 뉘앙스가 전해졌는데, 파우스트의 견고한 보잉(바이올린 연주에서 활을 긋는 기술)이 자아내는 차가움은 섬세한 비브라토로 따뜻한 온기를 품었고, 멜니코프의 절제된 타건(打鍵)은 그러한 바이올린의 선율과 동행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말년작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장조 Op.134’(1968년)는 거칠고 어두운 시대를 살아 낸 한 음악가의 회고와도 같았다. 파우스트와 멜니코프, 두 연주자는 작품 전반에 내재한 고독과 두려움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시종 집중력 있는 앙상블을 선보였다. 특히 3악장 바이올린의 건조하고 강렬한 피치카토로 시작해 피아노의 무거운 스타카토, 그리고 두 악기가 선율의 형태로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진 음악적 긴장감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12음 기법’으로 새로운 음악적 질서를 제시한 아놀드 쇤베르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Op.47’(1949년)은 자유로운 흐름 속 그만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파우스트와 멜니코프는 명확한 구조 설정과 선명한 사운드를 통해 작품의 포인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페루초 부조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e단조 Op.36a’(1898년)의 다채롭고 실험적인 면모는 고전부터 동시대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작품을 해석하는 공통된 언어를 체화해 온 파우스트·멜니코프 듀오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무결점 기교는 기본, 불필요한 동작이나 쇼맨십은 없었다. 오직 각 프레이즈(Phrase, 악절)에서 발산하는 다양한 색채와 질감, 부피를 가진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쉽게 사라지는 도파민이 아닌 긴 여운과 상상의 여백을 남기는 연주. 연주자가 아닌 음악이 말하는 연주. 이날 무대는 점점 사라져 가는 정통 클래식 공연의 표본 같은 연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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