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릴 사람은 걸려, 비닐장갑 안 껴요"…확진자 사전투표 '아수라장'

이상원 기자I 2022.03.05 20:41:38

사전투표 둘째 날 오후 5시부터 6시 확진자·격리자 투표
방역 무너진 투표장…확진자·비확진자 줄 섞이기도
확진자 기표소 1개…1시간 넘게 추위에 떤 시민
투표 용지 대리 전달·공개된 투표함…시민 분노

[이데일리 이상원 기자] “복불복이에요. 비닐장갑 안 끼셔도 돼요”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미비한 준비와 적절하지 않은 안내로 투표장 곳곳에서는 혼선이 벌어졌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오후 서울역 설치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들이 투표 후 투표용지를 제출하고 있다.(사진=뉴스1)


◇“걸릴 사람은 걸린다”…선거사무원의 안일한 대처에 무너진 방역지침


코로나19 비확진자인 30대 여성 박모씨는 이날 오후 5시 10분쯤 경기 화성의 한 사전투표소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방역지침에 대한 안내가 이뤄지지 않아 분노했다. 박씨는 한 선거사무원이 줄 서 있는 시민들을 향해 “`거리두기 해봤자 (코로나19)걸릴 사람은 다 걸린다` `감기약 잘 챙겨 먹으면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씨가 “비닐장갑 껴야 되나요”라고 묻자 해당 사무원은 “`안 끼셔도 된다. 신분증만 지참하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다른 사무원들도 착용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고 해당 시간에 투표를 한 사람은 모두 비닐장갑을 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확진자와 비확진자 간 기표소가 나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사무원의 미숙한 대처에 시민들은 불만을 표했다.

천안의 한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한 50대 여성 조모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안내에 불평을 토해냈다. 오후 5시 20분쯤 투표소에 도착한 조씨는 사무원의 안내가 없어서 줄을 섰는데 알고 보니 `확진자` 줄에 서 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조씨는 “선거사무원이 끝에 서 있던 것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가 뒤늦게 나와서 `확진자는 이쪽 줄에 서세요`라고 말해 그때야 자기가 확진자 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 같은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비확진자 줄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투표권 행사하러 왔는데 기표소 달랑 한 개…“이럴 거면 왜 오라고 하나”

확진자들의 불만도 이어졌다. 코로나19 확진이 돼 격리 6일차인 20대 여성 조모씨는 선관위의 부실한 대처에 경악했다고 전했다. 경기 안산의 한 사전투표소를 이용한 조씨는 오후 5시가 되자마자 도착했지만 확진자를 위한 기표소가 1개만 준비돼 있어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안 그래도 아픈 사람들인데 밖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서 있으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다”며 “확진자가 하루에 15만명을 육박하는데 기표소 딸랑 하나 세워두는 건 융통성 없는 처신이다. 사람들 다 소중한 한 표 행사한다고 나온 건데 확진자라고 이런 취급받는 건가 싶어서 기분이 별로였다”고 토로했다.

결국 줄이 줄어들지 않자 오후 6시 이후 마감된 일반 기표소에 확진자들이 들어가 투표를 할 수 있었고 내부에는 5개 이상의 투표소가 설치돼 10여분 만에 끝이 났다고 조씨는 설명했다.

서울 마포의 한 사전투표소를 이용한 40대 남성 이모씨는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빨리 하고 들어가려고 오후 4시 30분부터 빠르게 이동했지만 기표소가 제대로 준비돼있지 않아 밖에서 2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다”며 “이럴 거면 왜 투표 시간을 만들어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최대한 비확진자와 접촉하지 않기 위해 애쓰려고 했는데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사람들의 눈살도 찌푸려지는 게 느껴지고 굉장히 곤혹스러웠다”고 전했다.

미비한 `투표함` 또한 문젯거리였다.

서울 중구의 한 사전투표소는 밀봉된 투표함이 아닌 작고 투명한 비닐 봉투에 투표용지를 넣어야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30대 여성 박모씨는 “그래도 어렵게 투표권을 행사하러 나왔는데, 내 표가 제대로 전달되는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다른 한 곳은 투표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사무원에게 대신 전달해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이뤄지자 시민들은 투표를 거부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에 본투표날인 오는 9일에도 원활한 진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 현장에 갔다가 줄이 너무 긴 상황에서 몸이 좋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온 확진자 30대 남성 김모씨는 “당일에도 밖에서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며 “투표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는 사전투표 2일차에 한해 방역당국의 외출 허용 시각부터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사전투표소에 도착하면 사전투표를 진행했다. 선거 당일인 9일에는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주소지 관할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제주시 연동 사전투표소인 제주도의회 내 임시 기표소 앞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투표사무원에게 기표지를 제출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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