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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마법]⑦찬성보다 반대 많아도 '금뱃지' 가 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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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슬 기자I 2016.04.07 09:02:28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Q.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후보자 A씨를 유권자 10명 중 2명이 반대하고 1.8명이 지지할 때 이 사람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까?

정답은 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부산 사상구는 37.8%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장제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전체 표 중 45.49%를 득표해 당선됐다. 결과적으로는 부산 사상구 주민 10명 중 3.8명이 투표해 절반이 안 되는 1.8명이 ‘이 사람을 4년 동안 국민의 대표로 하겠다’는 것에 찬성한 셈이다. 그런 생각에 2명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6.2명은 침묵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투표율의 그림자’다.

18대 총선은 전국 지역구 단위에서 역대 최저 투표율(46%)을 기록한 전국 단위 선거였다. 부산 사상구 외에도 투표율이 30%대인 선거구가 20개에 달했다.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 대표성이 없는 이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던 ‘역대 최악의 선거’였다.

낮은 투표율의 원인은 여야의 구태정치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계파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공천탈락에 반발한 현역 의원 상당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 과정에서 ‘친박연대’라는 급조된 당이 나타나기도 했다. 입장은 180도 뒤바뀌었지만 있었던 최근 새누리당 공천파동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에는 대형정책이슈가 없는 가운데 막판까지 부동층이 많고 선거바람이 일어나지 않았다. 남부지방에 내린 갑작스러운 폭우도 선거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혔다. 결국 20, 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치혐오와 무관심이 확산하며 투표율이 지난 17대 총선(60.6%)보다 14.5%포인트 떨어졌다.

당시 결과는 한나라당이 153석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통합민주당이 81석, 무소속이 25석으로 뒤를 이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까지 고려한다면 압도적인 여당의 승리였다.

19대 총선 투표율은 54.2%를 기록해 18대 총선보다 8.1%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전국구 선거 투표율이다. 당시 무상복지와 불법사찰 정국이 전국의 선거판을 뜨겁게 달구면서 정치판에서는 ‘야당이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과는 새누리당이 152석을 차지해 과반 이상을 확보했다. 부동층을 움직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로는 민주당의 공천실패가 꼽혔다.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총선을 기준으로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88년 13대 총선(75.8%)이다. ‘1여3야’ 구도였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높은 열망으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5석을 차지해 첫 여소야대의 국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후 역대 투표율은 71.9%(14대), 63.9%(15대), 57.2%(16대), 60.6%(17대)로 내림세를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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