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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적대와 혐오를 넘어…일본을 보는 '새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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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성 기자I 2026.03.30 06:01:22

일본을 걷는 이유
임병식|408쪽|디오네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한일 관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과거’에서 출발한다. 침략과 식민 지배, 강제징용과 위안부, 독도와 역사 왜곡 등 과거사에서 비롯된 갈등은 반복해서 현재를 흔든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찾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다. 매년 수많은 사람이 일본을 찾지만, 여전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 나라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본을 걷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현장 르포이자 인문 기행서다.

언론인 출신 저자는 2년에 걸쳐 일본 최남단 이부스키에서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과거사 현장을 걸었다. 그 여정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전쟁범죄에 침묵하는 일본, 가해 행위를 반성하는 일본,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움직이는 일본을 동시에 만난다. 이 책은 일본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호불호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를 넘어 각각의 공간과 인물에 깃든 기억을 더듬으며 일본 사회가 지닌 여러 얼굴을 드러낸다.

과거사 현장 걸으며 다양한 일본의 모습 보여줘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구조를 따라 전개된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기억의 층위는 점차 깊어지고, 미래를 향한 질문 역시 서서히 성숙해 간다.

1부 ‘봄_기억과 만남의 시작’에서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비극적 죽음이 머물러 있는 후쿠오카와 조선 침략의 발현지 히젠 나고야 성터를 찾는다. 이어 아리타·이마리·다케오에서 일본 도자기 산업을 일으킨 조선 도공의 발자취를 살피고, 미이케 탄광에서 강제 노동의 기억이 묻힌 세계문화유산과 마주한다. 윤봉길 의사가 생을 마친 가나자와, 그의 폭탄 투척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쓰 마모루의 고향 기쓰키에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되새긴다.

2부 ‘여름_전쟁의 길, 평화의 길’은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쓰마 사무라이의 고향이자 일본 근대 산업이 시작된 가고시마에서 시작된다. 최남단 이부스키와 치란에서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의 광기 어린 흔적을 마주하고,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나가사키를 들여다본다. 이어 동아시아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한 시모노세키와 요시다 쇼인이 쇼카손주쿠 학당에서 메이지유신 핵심 세력을 길러 낸 야마구치 하기를 방문하며 근대화의 명암을 사유한다.

3부 ‘가을_기억의 그늘, 시민의 빛’에서는 조선통신사가 남긴 평화와 교류의 흔적이 흐르는 이와쿠니·구레·토모노우라를 따라간다. 최초의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마네, 일본인 포로 귀환의 관문이자 귀향길에 침몰한 조선인의 비극적 기억이 뒤엉킨 마이즈루항을 지나면서는 역사의 그림자를 되짚는다. 한편, 해마다 안중근을 기리는 다이린지와 즈이간지에서는 적대적 감정을 넘어선 존경과 이해의 현장을 발견한다.

4부 ‘겨울_혐오 이후, 미래를 묻다’에서는 조선인을 변호했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삶을 조명한다. 또한 일본 북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가며 사도 광산 강제징용과 재일교포 북송이라는 무거운 역사를 떠올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탄생한 에치고 유자와에서는 문학의 서정 속에서 군국주의 일본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어 화려한 거리 뒤에 도쿄 대공습과 간토 대지진의 어두운 흔적이 남아 있는 도쿄를 거쳐, 개척과 수탈의 역사가 서린 홋카이도의 장대한 자연 앞에서 책임과 화해라는 묵직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복잡한 韓日 갈등의 역사, 균형있게 풀어내

역사적 현장을 차근히 더듬으며 축적한 기록은 일본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 준다. 일본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며, 전쟁을 미화하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과거를 반성하는 목소리도 공존한다. 이런 복합적인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반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역사는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가는 충돌하지만 시민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며 “군국주의 일본과 양심적인 일본인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범죄와 반성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묻되, 시민 개인을 향한 혐오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균형 감각’이다.

조선인의 희생을 명시한 일본의 박물관과 위령비를 비롯해 안중근을 추도한 일본인 헌병, 조선인을 옹호한 일본인 변호사, 제국주의 범죄를 파헤친 일본의 지식인들, 학살 현장에서 수백 명의 조선인을 구한 일본인 경찰서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이란 단순히 시야를 넓히는 일이 아니라, 관점과 인식의 변화를 통해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바로 그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책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며 감정이 아닌 사유를 통해 일본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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