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전력망 구축 비용의 대부분을 입주 기업이 부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1단계 전력망 구축비의 약 80%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수요기업이 부담하고, 한국전력 부담은 20%에도 못 미친다. 정부가 국가전략산업이라고 내세운 사업의 기본 인프라 비용을 기업에 대부분 떠넘기는 구조가 정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직접 쓰는 전용 송전선이나 개별 변전설비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업은 정부가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육성하는 초대형 클러스터의 핵심 기반시설이라는 점에서 일반 기업 전용설비와 똑같이 볼 수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광역 송·변전망은 도로·철도·항만·용수처럼 국가 산업경쟁력을 떠받치는 공공 인프라다. 국가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도로·용수·전력 등 기반시설을 지원해 온 이유다.
반도체는 전력 사용량이 막대하고 안정적인 공급이 생산 경쟁력을 좌우한다. 미국·일본·유럽이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보조금과 세제지원뿐 아니라 전력·부지 지원을 앞세워 반도체 투자를 유도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핵심 인프라 비용을 기업에 떠넘긴다면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의 앞뒤도 맞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국가전략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기업 투자를 독려하고 성과를 홍보한다. 다른 쪽에서는 송전망과 변전소 같은 기반시설 구축까지 기업 몫이라고 한다. 산업정책은 투자하라 하고 에너지정책은 알아서 전기를 끌어다 쓰라는 식이다.
이럴 거면 정부가 국가산단을 지정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과거 다른 국가산업단지와 경제자유구역을 만들 때 도로·용수·전력망 등 기반시설을 어떤 원칙으로 부담했는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국가가 전략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세금을 걷고 산단을 지정한다면 최소한 광역 인프라에는 국가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기업에 공장을 지으라 하고 전력망도 깔라 할 거라면 왜 국가산단을 지정하고 세금을 걷나. 반도체 경쟁은 기업들만의 경쟁이 아니다. 전력망·용수·부지·인허가를 포함한 국가 시스템의 경쟁이다. 정부가 투자 유치 생색만 내고 인프라는 기업에 떠넘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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