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3년 내 외국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20·30대 국내 이공계 인재가 최고 62%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한국은행이 그제 내놨다. 이공계 두뇌의 탈(脫)한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통화시스템과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중앙은행마저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과학기술 경쟁의 승패가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를 맞아 이런 상태라면 나라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짙게 깔려 있다.
조사에 응답한 국내 교육기관·연구소·기업의 석·박사급 연구자 1916명 중 한국을 떠나는 것을 고려 중인 전체 비율은 37.0%에 달했다. 하지만 젊은 층일수록 이 비중은 더 높아져 20대 62.1%, 30대 50.7%까지 뛰었다. 젊은 엘리트들일수록 탈한국을 선호한다는 증거다. 주목할 것은 이직 고려 배경이다. 1순위로 꼽힌 것은 ‘금전적 이유’였지만 2, 3위는 ‘연구 생태계 및 네트워크’와 ‘기회 보장’이었다. 연구 환경 조성에서 우리나라가 아직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해외 체류 이공계 인력까지 포함한 설문에서 해외 전문가들의 만족도가 국내에 비해 가장 높았던 부문은 연구 생태계(1.64배)였다는 한은 조사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4~2023년 해외로 간 이공계 석·박사는 1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의대 열풍에 최우수 인재를 다 뺏기고, 중견·원로 엘리트들은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현재와 같은 장면이 계속된다면 인재 공동화를 피할 수 없을 게 뻔하다. 고급 기술 인력 1000만명 양성 계획을 통해 과학 기술 인재 육성에 나선 중국의 사례가 부러울 뿐이다.
이공계 인재 유출을 막을 1차 책임은 소속 회사, 기관에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과학영웅 예우’ 등 거창한 구호보다 연구자들이 한국을 떠날 마음을 먹지 않도록 제도적, 경제적 지원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인공지능(AI)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국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위기”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절박한 인식이 이공계 두뇌들의 탈한국을 멈출 수 있도록 화끈한 대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