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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필요한 전력 공급 고민을 토로하며 이전 가능성을 내비친 이후,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가 반복해서 내놓고 있는 해명이다.
기업이 사업 입지에 대해 직접 판단하는 건 언뜻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기반으로 기업이 6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약속한 형태의 초대형 사업이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떠올려 보면 정부의 이 같은 발언은 무책임 그 자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당 사업은 유례없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됐다. 규모만 놓고 봐도 애초 정부의 인프라 지원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한 구조다.
현재 국내 전체 전력 공급능력의 10%가 넘는 15기가와트(GW)의 전력과 부산시의 하루 생활용수와 맞먹는 100만톤(t) 이상의 물(용수)을 공급해야 하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어느 지역에 입지를 두더라도 내용만 보면 국가 차원에서 총력으로 지원할 사실상 국책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계획을 세워 기업의 사상 최대규모 국내투자 계획을 이끌어낸 게 불과 3년 전이다. 이제 와 입지를 포함한 투자 판단의 책임을 개별 기업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자문해봐야 한다. 비록 ‘기존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해도 말이다.
정부가 부지 이전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기업들은 전전긍긍 상태다. 앞서 언급했듯 국가의 전폭적 지원이 필수인 만큼 정부의 뜻을 거스르기 쉽지 않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자율에 맡긴다지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의 상황이기도 하다.
백번 양보해 전 정권이 결정한 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새 정부가 사업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자. 전력 공급과 지역균형발전 등 여러 이유와 조건을 근거로 입지를 이전하는 편이 국익과 기업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판단과 이행, 그에 따른 부작용 등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마치 ‘남일’ 얘기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혼란만 커지고 있다. 6·3지방선거와 맞물려 경기도·용인은 입지를 지키느라 바쁘고, 전북도와 새만금 등 타 지역에선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 구호가 난무할 뿐 국가적 사업을 이행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검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전 세계가 반도체 기업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설비 입지를 스스로 결정하라며 판단과 그 책임까지 기업에 돌리는 상황이라면, 그들이 해외에 둥지를 틀지 말란 법이 있을까. 우리는 정부가 팔짱을 끼고 나 몰라라 하는 사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겠다며 달콤한 약속을 뿌리고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