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보경 기자] 정영숙(58·경기도 구리)씨는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돌보며 집 근처 응급실을 가는 일조차 어려웠다. 열이 올라 신음하던 시어머니가 병원에서는 “집에 가고 싶다”며 불안해 하면서다.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큰 시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던 정씨는 1년간 집에서 직접 돌봤지만 임종말기가 되면서 집에서는 시어머니에게 적절한 치료를 해줄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물건을 잘못 밟고 미끄러진 이후 누워만 있게 됐고 결국 욕창이 생겼다. 시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는 구급차를 이용해야 했지만 굳어버린 몸을 휠체어에 앉히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집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선택은 쉽지 않다. 가족이 돌봄과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환자의 신체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면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니고서는 적절한 의료 처치를 받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혀서다.
10명 중 7명은 자택임종 원해
생애말기환자의 경우 익숙한 공간인 가정 내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2월 건강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장기요양 수급자 중 돌봄수급노인(2023년 기준)의 67.5%는 임종 장소로 ‘자택’을 희망했지만 실제로 자택에서 임종하는 경우는 14.7%에 불과했다.
오는 27일부터 본격 추진하는 통합돌봄 본사업에도 생애말기진료 모델은 포함되지 않아 환자 및 보호자의 요구와 현실의 괴리는 여전할 전망이다. 통돌의 정책목표가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종까지 지킬 각오로 요양시설에서 장인을 모셔온 현모(70)씨도 막막한 건 매한가지였다. 병세가 악화돼 종일 누워서 지내는 장인을 대신해 치매약을 받으러 갔는데 처방을 거절당해서다. 의사는 대리처방을 받으려면 환자가 1년에 한번 직접 와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가정 내에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의료 현장에서는 지원 시스템이 미비함을 꼽는다. 의사가 감당해야 하는 업무 범위도 늘어나고 그 결과 인력난이 생기면서다. 정혜진 우리동네30분의원 원장은 “최근 들어 임종을 앞둔 가족을 집에서 모시고 싶다는 요청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진료 일정이 너무 과중해 부득이하게 대부분 거절하고 기존에 진료해온 환자들에 한해 생애말기진료를 봐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재택의료센터로 지정된 이곳은 의사 3명, 간호사 5명이 있어 인력이 부족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임종이 임박한 ‘생애말기환자’로 판단되면 관련 진료는 사실상 정 원장이 전담한다. 그는 “우리 말고도 생애말기 환자는 전부 원장이 볼 것”이라며 “야간이나 주말에도 대응해야 하는 만큼 다른 의사들에게 업무를 맡기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했다.
재택의료센터는 ‘통합돌봄’의 핵심으로 꼽힌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이 돼 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 돌봄서비스를 연계하는 제도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155개 의료기관을 추가 지정해서 센터를 총 344개까지 늘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센터 안에서도 생애말기환자는 잘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정 원장의 설명이다. 일반 재택의료는 한달에 한번 자택을 찾는데, 임종이 임박한 환자는 상태가 자주 변하는 만큼 일주일에 최소 1번은 찾아가 상황을 봐야 한다. 상황에 따라 긴급 대응을 해야 할 때도 있어 정규 진료시간 외 주말이나 야간을 이용해 진료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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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사망하면 사망진단서 작성을 위해 급하게 집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사망할 경우 사망 판정과 사후 관리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가족들이 큰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사망진단서 발급이 없으면 사고사 여부를 밝히기 위해 경찰이 방문해야 한다. 심지어 하얀색 방역복을 입은 과학수사대가 방문해 사건현장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을 거쳐 검시의사가 사체검안서를 발급해 이상이 없을 때에만 장례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이윤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자택임종 후 사망 확인 절차 간소화, 검안 및 수사 기간 단축, 장례지원체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복지부가 마련한 사실상 유일한 생애말기 돌봄제도도 인력난 탓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기관은 최근 5년간 39곳에 머물러 환자가 원해도 이용이 쉽지 않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업무 부담이 클 뿐더러, 재택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경우 입원병동까지 연계해야 하기에 부담이 크다는 게 진료기관들의 입장이다.
다만 복지부는 연내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정과제에 생애 말기 지원 모델 마련이 포함돼 있다”면서도 “2027년까지 모델을 만들어 시범사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는 연구를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의료부담을 짊어져야 생애말기돌봄이 확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청우 중앙보훈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재택의료부터 시작해서 입원까지 연결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하지만 개별 의원에서 생애말기진료를 한꺼번에 떠안으려고 하다 보니 부담이 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의료수가 인상보다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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