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고문에게 이날은 운명과도 같은 날이었다. CJ그룹이 현재의 세계적인 생활문화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한 손 고문이 세상을 떠난 날은 CJ그룹(창업 당시 제일제당)의 창립 69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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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현재의 CJ그룹이 자리매김을 하는 데 고 손 고문의 역할이 컸다고 입을 모은다. 손 고문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부모인 고 이병철 회장 내외를 모시고 살면서도 장남 이재현 회장에게 “항상 겸손해라,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라, 일 처리에 치밀하되 행동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며 엄격하게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고 이병철 회장이 장손인 이재현 회장을 유달리 사랑하고 신뢰한 근저에는 손 고문의 이런 노력이 있었다.
특히 이병철 선대회장도 맏며느리인 손 고문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7년 별세하면서 삼성그룹은 3남 고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줬지만 손 고문에게는 안국화재를 맡겨 재계 이목을 끌었다.
안국화재를 물려받은 손 고문은 1993년 시작한 삼성과 CJ의 계열 분리 작업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보유하고 있던 안국화재 지분을 제일제당 지분과 맞바꾸며 현재 CJ그룹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제일제당은 제일제당건설과 제일씨앤씨, 제일냉동식품, 제일선물 등 4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1996년 그룹으로 공식 출범했다.
이후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손 고문은 본인이 보유한 지분을 이재현 회장에게 전부 증여하면서 현재 CJ그룹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다른 재벌 기업들과 달리 CJ그룹은 3남매 간 지분을 놓고 분란을 벌어지는 상황을 사전 차단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CJ그룹 고문을 맡아 업무를 보는 등 CJ그룹을 이끌고 있는 자녀들에겐 든든한 어머니이자 조력자로서 지냈다.
이재현 회장도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라며 “내가 그룹의 경영자로 자리잡는데 든든한 후원자셨다”라고 강조했다.
손 고문은 그룹 출범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매출 1조원대 식품회사인 제일제당이 세계적인 생활문화기업으로 도약하는 기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1995년 CJ가 문화사업에 진출하는 계기인 미국 드림웍스 지분투자 당시 손 고문은 창업자 중 한 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집에 초청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며 성공적 협력관계가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이끌었다. 2010년대 초반 글로벌 한식 브랜드 이름을 ‘비비고’로 정할 때도 “외국인들도 부르기 좋고 쉽게 각인되는 이름”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손 고문은 말년까지도 그룹경영진과 가족이 항상 성장하며 발전하도록 하는 화합과 교류의 든든한 구심점이었다.
한편 손 고문 빈소는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CJ인재원에 마련했다. 이 곳은 이재현 회장이 어린 시절 손 고문과 함께 살던 집터로 CJ그룹 창업 이후 인재양성을 위해 만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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