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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취재를 돕고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는 하루 5~6차례씩 우리 취재진이 보내온 영상이 재생됐다. 남북 정상의 공식일정부터 옥류관·대동강수산물식당 등 친교일정, 평양 시가지·출근길 등 좀처럼 접하기 힘든 북한의 일상도 담겼다.
현지에서 막 전송된 탓에 카메라 앵글은 다소 거칠고 불안정했다. 덕분에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스크린을 가득 메운, 날 것 그대로의 북한 모습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북한판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체제의 이질감과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이 함께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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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강남’으로 불리는 창전거리에 위치한 초고층 건물도 다수 눈에 들어왔다. 모두 개혁·개방을 강조한 김 위원장이 2016년부터 조성한 신도시에 해당한다. 기존 저층건물과 섞여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했다. 평양이 ‘단조롭고 건조한 무채색 도시’일 거라는 편견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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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면도 많았다. 대체로 다른 체제로 인한 이질감이었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문 대통령을 반긴 수십만명의 환영인파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은 한복, 남성들은 정장을 맞춰입고 준비해 온 진분홍 꽃술을 거의 같은 각도로 흔들었다. “조국 통일” “만세”도 동시에 반복적으로 외쳤다. 최고 수준의 환대를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전체주의 특유의 감성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영상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어린 학생들은 김정숙 여사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북한 최고의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답게 나이에 비해 수준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그러나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일말의 불편함도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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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화창한 천지를 배경으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가히 이번 회담의 ‘베스트 컷’이었다. 대부분의 조간신문이 이 사진을 다음날 1면으로 사용했다.
스크린에 송출된 북한 영상을 보며 자주 혼란스러웠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얄팍한 편견들이 대체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무지의 깊이가 그만큼 깊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함과 동시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에 이토록 몰랐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북한은 자주 우리들의 편견을 뒤흔들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북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북한의 속살을 편견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