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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온체인 금융 시대…정부가 검토할 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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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길 기자I 2026.09.26 0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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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운영체제가 바뀐다②
박도현 가천대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박도현 가천대 금융수학과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지난 글에서 토큰화는 조각투자의 확대가 아니라 금융의 운영체제가 바뀌는 일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크게 세 가지 축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작은 실험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 둘째, 위축된 블록체인 생태계의 불씨를 유지하는 것. 셋째, 스테이블코인을 새로운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보고 규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첫째, 작게라도 실제로 해볼 수 있게 하자. 새로운 기술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완벽한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블록체인이 표준이 될지, 어떤 형태의 토큰화가 시장에 자리 잡을지, 증권과 돈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해외 주요 금융당국이 흥미로운 접근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의 디지털 증권 샌드박스(Digital Securities Sandbox)는 단순한 기술 테스트 공간이 아니다. 기업이 샌드박스 안에서 실제 디지털 증권을 발행하고, 거래하고, 결제할 수 있다. 처음에는 제한된 범위에서 시작하지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실제 사업을 시작하고, 이후 거래 규모를 키워 최종적으로 정식 금융시장 인프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단계가 설계돼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법이 새로운 기술과 맞지 않을 경우다. 영국은 샌드박스 안에서 기존 법규를 한시적으로 조정해 실제 시장에서 시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실험 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법 자체를 영구적으로 바꾸는 구조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법을 완성한 뒤 시장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장을 열어본 뒤 그 경험으로 법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미국도 최근 비슷한 접근을 보여줬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9월 토큰화된 미국 상장주식을 온체인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처음부터 영구적인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5년짜리 한시적 예외를 만들고, 거래할 수 있는 종목 수와 거래량에 제한을 두고, 기존 주식과 같은 권리를 제공하도록 했다. 스마트컨트랙트 공개와 거래중단 규칙 같은 안전장치도 함께 붙였다. 동시에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받아 앞으로의 규칙을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

(사진=제미나이)
(사진=제미나이)
핵심은 명확하다. 일단 제한된 환경에서 움직이게 해보고, 그 결과를 보면서 장기적인 제도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또 다른 방식을 택했다. 통화청(MAS)은 프로젝트 가디언(Project Guardian)이라는 이름 아래 JP모건, 씨티, HSBC, DBS, 프랭클린템플턴 등 금융회사들을 불러 모았다. 국채와 회사채만 시험한 것도 아니다.

채권, 펀드, 외환, 구조화상품, 환매조건부채권(Repo), 토큰화 예금 등 다양한 금융거래를 실제로 연결해 봤다. 40개가 넘는 금융회사와 기관이 참여했고, 7개 관할권과 6개 통화에 걸쳐 15건 이상의 산업 실험이 진행됐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실험에서 끝내지 않았다. 가능성이 확인된 모델은 씨티(Citi), HSBC,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UOB 등이 참여하는 상용 네트워크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실험→검증→상용화라는 길을 정부가 금융회사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세 나라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미래 금융의 모습을 먼저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작은 범위에서 실제 거래가 일어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찾아 규제를 보완했다.

한국에도 이미 금융규제 샌드박스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 최근에는 토큰증권의 범위를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까지 확대하고,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장내 토큰화 거래를 시험하겠다는 방향도 나왔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볼 수 있다. 기존 금융규제 샌드박스 안에 ‘온체인 금융 전용 트랙’을 두고 발행에서 거래, 결제, 수탁, 담보까지 전체 흐름을 한번 연결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관투자가만 참여해도 된다. 거래 규모도 작게 제한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보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배우는 것이다.

둘째, 산업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제도를 만들어 놓아도 그것을 구현할 기업과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는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터넷(KISA) 조사에서 블록체인 사업에 새로 진입한 기업은 2022년 121개에서 2024년 37개로 줄었다. 반면 지금 벤처투자와 인재의 관심은 빠르게 인공지능(AI)으로 이동하고 있다. AI에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산업이다. 다만 기술에는 사이클이 있다.

오늘 투자자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해서 몇 년 뒤 중요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금융 인프라는 시장이 열린 뒤 돈을 투입한다고 몇 달 만에 만들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개발자와 기업이 오랜 기간 기술을 쌓고 실제 서비스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금융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정부가 어느 기업이 성공할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시장 관심이 낮은 시기에도 핵심 기술과 사람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금의 통로를 유지하는 것이다. 모태펀드나 정책금융기관이 민간 전문 운용사와 함께 온체인 금융·블록체인 분야에 투자하는 성장펀드를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뿐아니라 수년 동안 기술을 개발해 온 기업들이 해외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스케일업 자금도 필요하다. 규제가 풀리는 날 기술기업과 개발자가 함께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사라진 생태계를 다시 만드는 데는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셋째, 스테이블코인 논의도 한 단계 올라갈 때가 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질문은 주로 “허용할 것인가”, “누가 발행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었다. 그 사이 세계는 많이 달라졌다.

미국은 2025년 지니어스법(GENIUS Act)를 통해 지급형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홍콩도 발행자 라이선스 제도를 시행했다. 영국은 더 나아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증권 샌드박스(Digital Securities Sandbox)에서 토큰화 증권의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날까.

온체인 금융의 구조를 생각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과 채권이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려면 그 반대편에는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증권만 토큰화하고 대금은 다시 기존 금융망에서 따로 결제한다면 온체인 금융의 장점은 크게 줄어든다.

그런 의미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단순한 또 하나의 ‘코인’으로만 보기 어렵다. 온체인 금융에서 현금과 결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이기도 하다. 물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무조건 허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통화정책, 자본유출입, 소비자 보호와 금융안정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다만 질문은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넘어, 어떤 준비자산을 가져야 하는지, 언제든 액면가로 상환할 수 있는지, 고객 자산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은행의 예금토큰이나 중앙은행 결제수단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위험하다고 외면하기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문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결국 세 가지다. 금융의 운영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정부가 미래의 모든 것을 예측할 필요는 없다. 대신 세 가지 방향은 분명하다. 작은 실험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 제도, 그 실험을 수행할 기업과 사람이 남아 있는 생태계, 그리고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새로운 결제수단을 검증할 규칙이다.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미래의 승자를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실제 시장에서 검증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한국은 블록체인 시대를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고도 그 앞선 출발을 금융산업의 경쟁력으로 충분히 연결하지 못했다고 썼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볼 수 있다. 다음 금융의 승자가 어디에서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후보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지금부터 만드는 일이다.

박도현 가천대 금융수학과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미국 미시간대 금융공학 박사 △한국투자증권·하나증권·미래에셋증권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2014년~) △파이랩테크놀로지 창업자 겸 대표(2017년~)
박도현 가천대 금융수학과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미국 미시간대 금융공학 박사 △한국투자증권·하나증권·미래에셋증권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2014년~) △파이랩테크놀로지 창업자 겸 대표(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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