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실장에게 대미 투자는 안보 협상을 움직이는 지렛대였다. 미국이 원하는 투자를 내놓아야 한국이 원하는 핵잠과 원자력 문제도 움직일 수 있었다. 반면 김 전 실장에게 대미 투자는 안보 성과를 얻기 위한 비용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독립적인 경제 협상이었다.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 사업성이 있는 프로젝트인지,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는 않는지부터 따져야 했다. 안보에서 무엇을 얻든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계산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 협상에 필요한 충돌이었다. 한쪽은 협상을 움직이기 위해 미국에 제시할 카드를 고민했고, 다른 한쪽은 그 카드의 가격이 지나치지 않은지 따졌다. 위 실장이 미국과의 큰 거래를 설계했다면 김 전 실장은 계약서의 숫자와 조건을 살폈다. 서로 다른 계산법이 부딪혀야 대통령에게도 완성된 선택지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 김 전 실장이 이달초 물러났다. 적어도 대통령실 안에서 위 실장과 대등하게 다른 손익계산서를 내밀던 축은 약해졌다. 대미 협상의 무게중심이 안보실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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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투자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를 제공하고 교착됐던 안보 협상까지 움직이는 촉매가 됐다. 투자 협상이 진전되면서 핵추진잠수함과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해 한국이 오랫동안 미국에 요구해온 사안을 정상 차원의 테이블에 올릴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처음으로 직접 논의했다. 실무선이나 장관급 협의에 머물던 전작권 문제가 두 정상 간 의제로 격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핵잠과 원자력협정에 이어 전작권까지 테이블에 올랐다는 것은 한국이 한미동맹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를 미국 대통령과 직접 다루게 됐다는 뜻이다.
여러 현안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돌파구를 만드는 위 실장의 협상력이 작동한 대목이다. 미국은 관세와 투자, 조선·원전 협력, 핵잠과 전작권 등 동맹 현안을 따로 떼어 다루지 않는다. 모든 의제를 하나의 거래로 연결한다. 한국만 부처별 칸막이에 갇혀 대응했다면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안보실장이 전체 협상을 조율하는 체제는 속도와 일관성 측면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미 투자 협상 자체의 성적표가 충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과 원금 회수 장치를 강조하지만 사업 선정과 소유·운영 구조에서 미국이 쥔 권한은 작지 않다. 원금을 회수한 뒤 한국과 미국이 수익을 10대 90으로 나누는 구조도 논란거리다. 미국 국채 금리에 연동된 조달 비용까지 고려하면 사업의 수익성이 상당히 높아야 한국 몫이 남는다.
미국의 압박은 지난해 11월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보다 훨씬 강해지고 있다. 당시 협상의 초점은 3500억달러라는 투자 약속의 큰 틀과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집행 조건을 정하는 데 있었다. 한국은 ‘상업적 합리성’과 연간 투자 한도, 사업 진척도에 따른 분납 등을 안전장치로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협상이 총론에서 집행 단계로 넘어오면서 미국의 요구는 달라졌다. 투자 약속은 어느 사업에 언제 얼마를 보낼 것인지가 적힌 구체적인 청구서로 바뀌었다. 미국이 관리·지배하는 투자 특수목적법인 아래 개별 프로젝트를 편입하고 사업 선정 이후 신속하게 투자금을 보내라는 구조다.
후보 사업의 위험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가스복합발전 사업은 사업비가 계속 불어나고 전력구매계약도 확정되지 않았다. 원전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역시 규모는 크지만 인허가와 사업비, 공사 기간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미국은 사업을 조기에 확정해 투자를 집행하라고 압박하지만 한국은 수익성과 위험을 검증할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자체가 협상의 쟁점이 됐다.
MOU에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문구를 넣는 것과 실제로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사업만 골라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경제성이 부족한 사업을 거부할 수 없다면 상업적 합리성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협상을 포장하는 수사에 그칠 수 있다.
여기서 한미 협상의 시간차가 드러난다. 대미 투자금은 사업이 선정되면 계약과 송금으로 현실화하는 현재의 의무다. 반면 핵잠과 원자력협정 개정, 사용후핵연료와 전작권 문제는 미국과의 후속 협의를 거쳐야 하는 미래의 성과다.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구체화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얻어낼 안보 이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미래의 약속을 얻기 위해 현재의 비용을 먼저 확정하는 비대칭이 생길 수 있다.
김 전 실장은 바로 이 시간차를 경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안보 협상의 가능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약속이 실제 권한으로 바뀌기 전까지 한국의 경제적 의무가 지나치게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퇴를 단순한 인사 변화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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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중심으로 재편되는 대통령실의 대미 협상 체제에는 양면성이 있다. 여러 의제를 하나의 전략 아래 끌고 갈 컨트롤타워가 선명해진다는 점에서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협상을 추진한 사람이 안보에서 얻은 성과와 경제에서 치른 비용을 사실상 함께 평가하는 구조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안보 협상을 책임지는 사람은 핵잠과 원자력협정, 전작권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경제 책임자는 그 대가로 내놓는 투자가 국민경제와 외환시장에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 따져야 한다.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이 틀린 관계가 아니다. 두 계산이 끝까지 충돌하고 대통령이 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김 전 실장이 있을 때는 적어도 역할의 구분이 분명했다. 위 실장이 “이 카드를 써야 안보 협상이 움직인다”고 주장하면 김 전 실장은 “그 카드는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맞설 수 있었다. 김 전 실장이 떠난 뒤에도 경제부처와 산업부, 대통령실 경제 참모진이 남아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직접 교감하며 위 실장과 대등하게 다른 계산서를 내밀 정치적 무게까지 대신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때문에 후임 정책실장 인선은 단순히 대통령실의 빈자리를 채우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압박은 지난해 MOU 협상 때보다 강해졌고 협상은 총액과 원칙을 정하는 단계에서 개별 사업과 송금 시기를 결정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새 정책실장은 미국이 제시하는 사업의 수익성을 검증하고 외환시장과 재정에 미칠 충격을 계산하며, 필요하면 안보 논리에도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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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한국이 맞닥뜨린 흐름은 사회정책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의 집행과 한미 관세 문제, 반도체·배터리·조선·원전의 공급망 재편, 고환율과 외환시장 불안이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대미 투자 후보 사업 하나만 잘못 골라도 수십조원의 국부가 걸린다. 미국이 안보와 통상을 한 묶음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책실장의 경제 기능을 약화하면 경제적 판단은 안보 전략의 하위 변수로 밀릴 수 있다.
사회정책을 강화하는 것과 경제 사령탑을 약화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후임 정책실장이 사회정책에 무게를 두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관건은 대미 투자 사업의 경제성을 최종 검증하고 안보실의 판단에 이견을 제시할 권한을 누가 갖느냐다. 그 권한을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등에게 명확히 부여하지 않은 채 정책실장의 경제 기능만 줄인다면 내부 견제축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성락 체제의 위험은 그가 강하다는 데 있지 않다. 미국을 상대로 안보와 경제를 한 묶음으로 협상할 강력한 지휘자는 필요하다. 문제는 그 지휘자에게 “안보에서 얻을 가능성에 비해 경제적으로 치르는 값이 너무 크다”고 말할 반대편 축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미 투자는 한미 정상회담을 움직이는 촉매가 됐다. 이제 따져야 할 것은 그 문을 여는 데 얼마를 냈고, 문 너머에서 실제로 무엇을 가져왔느냐다. 핵잠과 사용후핵연료, 전작권 문제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투자 의무만 먼저 이행한다면 거래의 균형은 무너진다. 반대로 실질적인 안보 권한을 확보하고 투자 사업에서도 원금을 지킬 수 있다면 위 실장 중심의 통합 협상은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아직 위성락 1인 체제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김용범의 사퇴로 대통령실의 협상축이 위성락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의문은 남는다. 새 정책실장의 과제는 사회정책을 챙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보의 성과와 경제의 비용을 따로 계산하고, 미국의 거세진 투자 압박 앞에서 필요하면 “이 사업에는 돈을 보낼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한미 협상의 안전장치는 합의문에 적힌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문구만이 아니다. 안보에서 얻을 것과 경제에서 치를 값을 별도로 평가하고,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제도적 권한이 있어야 한다. 위성락 체제가 위험한지는 그가 얼마나 강한지가 아니라 그의 계산서를 독립적으로 검증할 또 하나의 계산서가 남아 있는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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