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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울산에서 고려시대 청동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울산박물관(관장 신광섭)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 중인 율리 영축사지(울산시 기념물 제24호)에서 청동향로, 청동시루, 청동완(사발) 등의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이번에 수습된 청동유물은 동탑 부재(部材)의 정밀 실측을 위해 무너져 있던 석탑 부재들을 옮기고 상층의 부식토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출토 위치는 동탑의 동북쪽 모서리에서 동쪽으로 2m 떨어진 지점이다. 거꾸로 엎은 청동시루 아래에서 향로가 넘어져 반쯤 걸친 상태로 발견됐다. 시루 안에 꽉 차있던 흙 내부에서 청동완과 시루의 나머지 손잡이 한쪽도 함께 확인됐다. 출토 상태로 볼 때 지름 50cm의 구덩이를 파서 청동향로를 놓고 그 위에 뚜껑 용도로 청동완을 덮은 뒤, 그 위에 다시 청동시루를 덮어서 묻은 것으로 보인다.
높이 25.7cm, 바닥지름 23.5cm의 청동향로는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원형받침 위에 향로의 몸체가 얹혀 있는 형태다. 다리와 받침, 몸체를 따로 만들어 각각 3개의 못으로 고정해 완성했다. 고려시대 청동향로는 현재 몇몇 알려진 사례가 있지만 영축사지 청동향로는 출토지가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은 물론 장식이 화려해 가치가 큰 것으로 보인다. 제작기법과 형태 등을 볼 때 현재까지 발견된 향로 중 비교적 이른 고려 전기(11~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시루는 높이 24cm, 입지름 42cm, 바닥지름 37cm의 크기다. 몸체는 원통형이며 중간 지점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시루 바닥은 2단으로 구획하여 꼬끼리 눈 모양의 안상문(眼狀文)을 뚫었다. 바닥에 몇 군데 수리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랜 기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청동시루는 청주 사뇌사지에서 확인된 예가 있지만 출토 당시 완전히 파손된 상태였다. 영축사지 청동시루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금속제 시루로 보인다.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등을 감안할 때 청동향로와 같은 시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청동완은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청동제 그릇 형식을 갖추고 있다. 지름 15.5cm, 높이 9.5cm이다. 청동향로의 아가리 부분을 덮고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묻을 당시에는 원래의 용도가 아닌 청동향로의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율리 영축사는 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대(683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된 울산의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사찰이다. 2012년부터 울산박물관에서 연차적으로 진행 중인 발굴조사 결과, 금당(법당)을 중심으로 동서 측에 석탑이 자리한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식 가람배치임을 확인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출토된 청동유물 3점은 일괄로 발견돼 전란 등과 같은 비상시 약탈에 대비해 묻어두는 유물인 퇴장 유물(退藏遺物)일 가능성도 있다”며 “고려 전기 영축사의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자, 당시 울산 지역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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