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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을 돈세탁에 악용하는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서울 구로경찰서는 대형상품권 업체 대표 A씨와 허위 상품권업체 대표 등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A씨는 2023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허위 상품권업체 11곳으로부터 2388억원을 받아 현금으로 세탁해줬는데, 허위 상품권 업체들은 점조직 형태의 자금세탁 조직 상선들로부터 투자 리딩 사기 등 각종 범죄수익금의 세탁을 의뢰받았다. 지난달 서울동부지검은 강남구에 유령 상품권업체를 세워 보이스피싱 조직의 돈세탁을 도운 30대 남성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범죄조직이 상품권을 돈세탁의 주요 경로로 삼는 이유는 관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상품권은 1994년 이후 빠르게 성장했는데, 1999년 정부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상품권의 발행과 상환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상품권법을 폐지했다. 그 결과 상품권의 유통 현황은 현재까지 불투명한 상태다.
주요국은 현금처럼 융통되는 상품권의 특성을 고려해 일찍이 관리·감독 규정을 법률로 정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일본은 1932년 상품권법 제정 후 2009년 ‘자금결제에 관한 법률’을 이용해 지류와 전자용 상품권의 발행자 등록 및 표시의무 등을 규정했다. 미국은 주법뿐 아니라 연방법으로 상품권(기프트카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같은 변화를 고려해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도 전자금융거래법의 선불업 등록대상을 전자상품권 발행업체까지 확대했다. 다만, 가맹점이 1개이거나 분기 말 발행잔액이 30억원 미만 또는 연간 총발행액이 500억원 미만인 업체는 등록 의무가 면제돼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상품권 악용을 막고자 20대와 21대 국회에선 상품권 발행의 신고와 제한, 이용자의 권리보호를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임기만료로 줄줄이 폐기됐다. 발행사 제한이 없던 상황에서 신고를 의무화하면 행정력이 낭비될 수 있고, 중소 온라인쇼핑몰과 같은 소규모 발행사는 상당한 업무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입법 문턱으로 작용했다. 관련 법안은 22대 국회에도 2건이 계류돼 있다.
금융범죄 전문가들은 상품권을 제도권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의 변호사는 “상품권은 발행이 너무 쉬워서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경우가 있다”며 “상품권 발행업체는 전수등록을 하도록 제한하되 금융위원회 등 유관기관에서 전산으로 상품권의 발행규모와 시간, 유통 등을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민석 금융소비자연대 변호사도 “상품권 발행 업체의 등록을 의무화함으로써 사기 등 금융범죄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