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구미호 가족(VOD)

조선일보 기자I 2006.09.22 12:00:00

여우 나온다고 ‘여우같은’ 영화되는건 아니네

[조선일보 제공]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구미호 가족’(28일 개봉)을 보고 난 뒤 궁금했던 건, 뮤지컬 형식에 관한 의구심이다. 사람이 되고 싶어 천 년을 기다려 온 구미호 가족이 서커스단을 만들어 인간의 간을 노린다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 유쾌한 코믹잔혹극의 신체에 뮤지컬 의상은 때로 너무 헐겁거나 불편할 정도로 꼭 끼어 보인다.

일명 ‘구씨네 가족’이 도심으로 진출했다. “저것들 인간 한 번 만들어 보려고…”라며 가족사랑을 불태우는 어수룩한 아버지 구미호(주현)의 1남 2녀. 수컷 냄새를 그리워하는 섹시한 첫째 딸(박시연), 머리보다는 몸이 앞서는 단순과격파 아들(하정우), 그리고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막내딸(고주연)이다. “볼 일 본 뒤 풀로 닦아야 하는” 네 발 생활 어언 1000 년. 싱싱한 간을 찾아 인간세계에 내려온 구씨네 주변에서 때마침 토막살인사건까지 벌어진다. 몰래카메라로 생계를 꾸리는 사기꾼 기동(박준규)이 큰딸 구미호의 유혹에 넘어가면서, 인간과 여우의 음흉한 속셈은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구미호 가족’은 산장을 새로 열었다가 밤마다 손님을 몰래 파묻어야 했던 ‘조용한 가족’(1998)의 연장선상에 있다. 코믹잔혹극이라는 조어(造語)를 친숙하게 만들었던 8년 전의 그 가족이 뮤지컬을 통해 다음 단계의 진화를 시도한 것이다. 토막난 시신의 손가락으로 자기 콧구멍을 후비는 엽기적 형사 등 몇몇 장면은 한층 강해진 자극과 웃음을 주고, 시위대와 전투경찰의 대결을 댄스 배틀로 꾸민 참신함은 통렬한 풍자정신도 엿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본질을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의 춤과 노래는 그들의 최선이겠지만, 최신 뮤지컬 트렌드에 눈밝은 젊은 관객에겐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게다가 마감을 앞두고 급하게 지은 모델하우스처럼, 드라마와 뮤지컬의 이음새는 군데군데 벌어져 있다. 이야기에 보다 무게 중심을 두는 평범한 대중관객에게, ‘구미호 가족’의 새로운 시도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영화 `구미호 가족`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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