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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15년 지났지만…사각지대서 고통받는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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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재 기자I 2026.08.31 05: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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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인정 받아도 등급 미산정…피해 미인정도 多
매번 응급실 찾는데도 치료비 보전도 미비
정부 대책 시행에도 피해자 우려는 여전
피해자 측 "협소한 피해 인정·배상 종결 조항 우려"
전문가 "판정 체계 신설·추가 피해 청구권 인정해야"

[이데일리 김현재 석지헌 기자 정유진 수습기자] “다음은 제 차례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 박준석(19) 씨는 최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 11일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서다.

박씨가 태어나던 2007년 어머니 추준영(55) 씨는 아이를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샴푸나 비누 옆에서 판매되던 시절이었다. 박씨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 폐에 문제가 생겨 응급실로 실려가 사경을 헤맸다. 살아남았지만 폐 기능의 약 40%를 잃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과 기흉·천식 등도 앓게 됐다.

박씨는 학창시절 내내 뛰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했다. 청년이 된 지금도 그의 키는 174㎝지만 몸무게는 48㎏에 불과하다. 하루에 15개의 알약을 먹어야 하고 가방에는 네블라이저와 급작스런 코피를 막아줄 지혈용 솜이 항상 들어있다.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과 조정이 무산되면서 박씨는 현재 치료비 일부를 보전해주는 구제급여만 받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시행하는 법정 배상에 대해 그는 “온전한 배상이 이뤄지길 바란다”면서도 “진정으로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박준석 씨의 모습. 박씨는 만성 폐질환 탓에 응급실에 입원하는 경우가 잦다.(사진= 추준영씨 제공)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박준석 씨의 모습. 박씨는 만성 폐질환 탓에 응급실에 입원하는 경우가 잦다.(사진= 추준영씨 제공)
“인과 설명 안돼”…보상 못 받는 피해자들

‘가습기살균제가 폐 손상의 주요 원인’이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온지 15년이 지났지만 박씨처럼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아픔을 겪는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도 등급 판정이 늦어지거나 아예 피해자 인정도 못 받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들은 특별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 인정범위가 더 좁아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고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신청자는 총 8094명이다. 이 중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6037명, 피해 미인정자는 2057명으로 집계됐다. 광범위한 피해가 있었지만 가습기살균제와 질환의 연관성을 본인이 입증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미인정자인 조인재(63) 씨는 지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약 10년 간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일했다. 당시 병실 안에서 환자들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면서 조씨도 자연스럽게 살균제에 노출됐다. 2016년 3월 조씨는 폐암 1기 진단을 받았다. 흡연자도 아니었고 가족력도 없었다. 폐 우상엽 3분의 1을 절제했다. 뒤늦게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조씨는 ‘가습기살균제 단순 노출자’로 분류됐다.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병마와 경제적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견디며 10년을 버텼다.

조씨는 폐암 수술비 약 4500만원을 비롯해 간병비·병원비 등으로 경제적 지출이 막심한 탓에 여전히 아픈 몸을 이끌고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故)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故)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내달부터 李정부 지원대책 시행…피해자 우려 ‘여전’

오는 10월 8일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이 시행된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규정했다. 이에 정부는 기존 피해구제체계를 국가 주도 배상체계로 전환하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각지대에 놓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피해 미인정자들은 여전히 해결할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배상 심의위원회의 재량이 커 피해 인정 범위가 협소해질 우려가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배상 결정에 동의하면 국가·사업자와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간주하는 점 등이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피해 특성상 새로운 피해가 신체에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통로가 막히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배상금 수령을 재판상 화해로 간주하는 조문이 피해자들에겐 부담이라는 것이다. 추씨는 “새로운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문제 제기 자체를 막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역시 우려를 표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재판상 화해로 간주하는 조문에 대해 “피해자에게 향후 발생 가능한 피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며 “추가 피해에 대한 배·보상 청구권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박동욱 방송통신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새로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배·보상 기준을 보다 촘촘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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