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협회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최근 꺼낸 카드는 ‘내부 고발’이다. 지난해 이사회에 참석한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리베이트 의심 업체 명단을 제출받고 제약협회장이 해당 업체에 구두 경고를 내리는 방식이다. “제약협회장만 리베이트 업체를 인지하는 것은 불투명하고 실효성도 의문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올해부터는 리베이트 의심 업체 명단을 확대했다.
제약협회 이사장단은 지난 22일 회의를 열어 무기명 리베이트 의심 업체 설문결과를 이사회 내부에서 공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사회에서 불법·불공정 영업 의심기업의 명단 공개에 이어 해당 회사 CEO에게 해명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 등도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이 방식도 뒷말이 많다. 이사회에는 이사장(1명), 부이사장(11명), 이사(36명), 감사(2명) 등 총 50개 업체가 소속돼 있다. 제약협회 소속 회원사 201개사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업체만 고발하는 음해성 폭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사회 내부에서만 리베이트 의심 업체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논란이 제기된다. 리베이트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의심 업체를 고발하는데 그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제약사 CEO가 적어내는 리베이트 업체 명단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다. 국내제약사 한 영업본부장은 “과거에는 특정 지역에서 근무하는 영업사원들이 리베이트 정보와 같은 판촉전략을 공유하곤 했지만 최근 리베이트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정보 공유는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친분이 두터운 의료진의 고백이 없다면 사실상 경쟁사의 리베이트 정보를 알아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영업사원들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털어놓는 거짓 정보가 회사 CEO의 귀로 들어가 제약협회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확실치 않은 리베이트 의심 업체가 외부로 새 나갈 경우 해당 업체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전쟁터와 같은 영업현장에서 제약사들이 경쟁 업체의 리베이트 정보를 가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쌍벌제가 도입된 이후 의료진들도 리베이트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졌다. 특정 제약사가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퍼지면 의료진들은 그 회사 자연스럽게 의약품 처방을 꺼리게 된다. 의료진들 사이에선 “리베이트 제약사와 거래하면 추후 뒤탈이 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 경우 해당 업체의 매출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의심 업체를 고발하려면 최소한의 물증과 함께 제시하고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칫 ‘묻지마 무기명 투표’로 희생양이 되는 업체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