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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사태 두달)①개성, 관광 그 이상의 특별한 여행

정태선 기자I 2008.09.23 10:09:39
[이데일리 정태선기자] 지난 7월 중순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은 그 충격이 컸던만큼 파장도 오래가고 있다. 사건 발생 두달이 넘도록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큰 틀에서 해법을 찾지않는 한 10년동안 이어온 금강산 관광사업은 냉각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아산과 북한측 사업자간 문제가 아니라 남북 당국간에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그러나 북핵시설 복구, 김정일 국방위원장 와병설 등 예측불허의 대형변수들이 터져나오면서 남북관계는 안개속이다.  대북이슈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뉴스 초점에서 한발짝 비켜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남북화해와 교류, 그리도 더 나아가 평화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만큼 하루빨리 이번 사태가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도 지난해 12월 이후 꾸준히 남북을 실개천처럼 잇고 있는 개성관광 코스를 지난 18일 둘러봤다.

◇평택보다 가까운 개성, 일산서 출퇴근 가능

새벽 6시쯤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에 올라 한시간을 가면 도라산 남측 출입국사무소가 나온다.

파주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10분정도 더 달리자 새 단장한 말끔한 도라산 기차역과 함께 나란히 출입국 사무소가 얼굴을 내민다. 간단한 출입절차가 시작된다. 현대아산 직원들은 출입허가증을 나눠주면서 버스가 북한으로 들어갈 때 남한 출판물, 전자 자료, 이동통신기기 등을 소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 선죽교
카메라도 디지털카메라는 허용되지만 어떤 내용인지 바로 확인해 볼 수 없는 필름사진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나 북한 체제에 대해 언급하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등 민감한 사안을 묻는 것은 금물이다.

이곳엔 우리은행 사무소가 있다. 인천공항도 아닌데, "마지막으로 환전할 수 있는 곳이니 기념품 등을 사기 위한 필요한 달러를 미리 바꾸라"는 말이 다소 낯설다.

지난해 12월 개성관광이 시작된 이래 하루평균 15대~17대가 오가던 관광버스는 추석 연휴 이후라 그런지 5대 안팎로 줄었다. 관광객수가 하루 600~700여명을 넘었지만 금강산 사태를 겪은 여파까지 더해 이날 출발인원은 165명에 불과했다.

북측 출입국 사무소 입구엔 남북교류를 상징이라도 하듯 개성공단에서 시계조립을 하고 있는 로만손의 대형시계탑이 서있다. 이곳에서 버스마다 북측 해설요원들이 두 명식 탑승했다. 개성공단 입구에 도착하기까지는 불과 몇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남북 출입국 사무소의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면 서울에서 개성은 한시간 남짓. 평택보다 가까운 거리다.

◇관광코스의 백미는 `개성시내`
▲ 송도 3절 중 하나인 박연폭포
당일 코스인 개성 관광. 오전엔 황진이, 서경덕과 함께 `송도 3절`의 하나로 꼽히는 박연폭포와 인근 관음사를 둘러봤다.

오후엔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생가인 숭양서원과, 그가 이방원(후에 조선 태종)에게 피살당한 선죽교, 고려박물관(성균관)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짜여 있다.

그러나 개성관광의 백미는 비록 관광버스 안이나 제한된 공간에서이긴 하지만 개성 시내를 볼수 있고, 북한 주민들을 언듯언듯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첫번째 관광지인 박연폭포로 향하기 위해서 버스는 개성 시내를 경유한다. 개성은 평양에 이어 북측서 잘 산다고 알아주는 도시지만 30~4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하다.  

개성시내엔 `김父子`를 찬양하는 특유의 문구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건물들은 회색빛 이고 낮다.  개성공단 입구의 `훼리밀 편의점`, 현대아산이 짓고 있는 대형건물과 대비되면서 더욱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84세 촌부, 다시 유년기로 돌아가
▲ 84세 실향민 이찬순 할아버지 박연폭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개성관광길에 오른 이父子 3대.
개성에서 박연폭포로 이동하는 시간은 50분 정도. 남북관계가 정상적이라면 서울서 2시간 가량을 투자하면 되는 셈이다.

이동하는 시간에 북측 해설원들은 관광코스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은 뒤, 구성지게 `고향의 봄`을 노래하며 관광객들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나중엔 관광객들이 개방된 공간이외에 한뼘이라도 이탈하거나 외부사진을 촬영할 경우 곧장 달려오곤 하지만, 북한 특유의 억양으로 농담을 건넨다. 무척이나 활달한 모습이다.

박연폭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절경이라 감탄이 절로나오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설악산 어디선가 본듯한 친숙한 느낌이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측 관광객들의 모습이다.
 
유난히 나이드신 노인들이 많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날은 이찬순(실향민 84세) 할아버지가 양복을 곱게 차려입고 박연폭포를 올랐다.

가을 초입인데도 30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한사코 넥타이를 풀지 않았다. 막내아들 이송복씨(34세, 대전)와 손자 이주성(1세)까지 부자 3대. 며느리까지 앞세우고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연신 `이번이 두번째 오는 길`이라고 자랑을 한다. 

이찬순 할아버지는 "유년시절에 한번 다녀오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폭포주변에 못보던 글씨들이 많이 늘었다"고 혼자말을 연신 되뇌였다. 북측이 주변에 여러 선전 문구들을 덧붙인 탓이다. 

부지런히 올라 왔던 발걸음과는 사뭇 다르게 폭포옆에 앉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시대의 질곡을 몸소 겪은 80대 노인을 유년시절로 되돌려 놓는 박연폭포가 잠시 애잔하게 다가온다.

아들 이송복씨는 "실향민인 아버지를 모시고 임진각을 다녀오곤 했는데, 개성에 함께 오게 되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금강산 사태로 인해 개성관광을 오는데 망설임은 없었냐는 질문에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큰 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왔다"며 "국내 관광지를 방문한 것 처럼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르는 것이 없는 북한 해설원..자본주의 냄새도 `솔솔`

개성관광을 하다보면 북한 해설원들의 말솜씨에 놀라게 된다. 먼저 말걸기를 꺼리지 않을 뿐 아니라 남측 소식에 대해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다.

기자라는 신분이 노출된 덕분에 다른 관광객보다 관심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촛불집회는 어떻게 됐습니까, 선생도 촛불집회 참석했습니까"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서 금융위기 때문에 시끄럽다고 하는데 남한은 괜찮습니까"

"10년동안 관광사업이 중단된 적이 없는데 남측 정권이 바꾸고 나서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요.
 
현정은 선생이 쑥세 먹는 것(수세에 몰리는 듯) 처럼 보입니다. 이번에 현대아산 사장이 바뀌어서 기대를 좀 하고 있었는데 별다른 일이 없습니다. 정부서 임명한 사람입니까"

적극적이고 당당하다. 더욱 아연질색한 질문은 "현대건설은 누가 가져갑니까?" 모르는 것이 없는 북한 해설원 선생들이다.
 
연신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어보는 질문이 신기할 정도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을 슬쩍 묻고 싶었지만 현대아산측 직원들이 단단히 주의를 줬기 때문에 꾹 참아야만 했다. 개성 관광길에서만 본 북한의 모습에선  `체제이상`의 징후는 발견할 수 없었다.

박연폭포를 둘러보고 버스는 다시 개성시내 중심부의 통일관에 도착했다. 
 
통일관의 자랑은 닭곰탕과 장지단(계란조림), 이면수 조림 등으로 구성된 `개성 13첩 반상기`. 쌀밥에 13가지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개성지역 토속요리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깡총한 한복을 입은 순박한 북한 아가씨들이 서빙을 해준다. 반상기 놋그릇을 만져보는 관광객에겐 묻지도 않았는데 55달러를 주면 `놋그릇 셋트`를 구매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식사와 곁들이는 술은 2종류인데 11달러, 16달러라고 말한다. 일종의 옵션인 셈이다.
 
단순히 `달러벌이`에 적극적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대목이다.

관광지에는 간이매점이 있어서 생수와 아이스크림을 판다. 샘물은 2병에 1달러, 탄산맛이 나는 약수는 한병에 2달러다. 아이스께끼라고 불러야할 것 같은 `에스키모` 얼음과자는 1달러, 개성 인삼을 넣은 젤리과자가  `인삼 단묵`이란 앙증맞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어 개성시 문화회관 뒤편의 숭양서원으로 향한다. 숭양서원은 정몽주와 서경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3년 정몽주의 생가터에 지어졌다.
 
바로 옆에는 역사책에서나 보던 선죽교를 볼 수 있다. 마지막 일정은 고려박물관인데 성균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겨레 독도 사랑.. 북한의 자존심 "사진 더 찍을게 없습니까"
관광 코스의 마지막인
▲ 북한여성들
고려박물관까지 보고 나오면 양옆으로 기념품판매점과 엽서나 주화 등과 함께 우표를 파는 박물관이 있다.

`김父子`를 기리는 엽서나 우표 기념주화가 대부분이지만 `독도 기념우표`가 눈길을 끈다. 한겨레를 확인하는 마침표 같은 느낌이다.
 
아쉬운 것은 우표나 엽서 인쇄물은 기념품 목록에서 빼야한다. 북측이 판매하지만 남측에선 반입금지 품목이다.

마지막 히트. 북측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할때면 일일이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내용을 검사받아야 한다.
 
북측 검사원은 투박한 목소리로 "사진을 많이 안찍었네요. 사진 찍을 게 별로 없습니까" 북한의 자존심인 듯하다.

북측 출입국사무소에서 마지막으로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남측으로 오면 오후 5시가 조금 넘는다.
 
개성에 가면 고려시대 유물들의 향취 그 이상이 있다. 한동안 냉각기를 거치더라도 남북 민간협력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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