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기후위기 시대 '배산임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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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환 기자I 2025.09.18 05:00:00

수천년에 걸쳐 검증된 생활의 지혜로 자연에 대한 철학
자연통제에 대한 믿음…기록적 홍수·가뭄 등 재난에 충격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기후행동 나설 때

[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우리 조상은 집터를 잡을 때 단순히 땅의 편리함만을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삶터를 둘러싼 산과 물의 흐름 속에서 안전과 풍요, 더 나아가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했다.

7월 20일 경남 산청군 한 마을 일대가 전날 내린 폭우 영향으로 훼손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 지혜의 압축된 표현이 바로 ‘배산임수’(背山臨水)다. 등 뒤에는 산을 두고 앞에는 물을 마주하는 자리. 풍수지리에서 가장 이상적인 입지 조건으로 꼽히지만 사실 이는 미신이라기보다는 수천 년에 걸쳐 검증된 생활의 지혜였다.

산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다. 혹독한 북풍을 막아주고 나무와 흙은 비를 머금어 가뭄을 완화했으며 숲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무와 약초, 사냥감을 제공했다.

물은 말할 것도 없다. 식수이자 농업과 생활의 기반이었고 물길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교류의 통로였다. 결국 배산임수란 단지 ‘좋은 자리를 찾는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활용하고 기대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도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깎고 강을 가뒀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기후위기는 그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다. 여름마다 반복되는 기록적 폭우와 홍수, 겨울과 봄의 산불, 강과 저수지의 물 부족 사태는 모두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결과다. 배산임수의 지혜에서 멀어진 만큼 우리는 기후변화의 충격을 더 크게 겪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이상 기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순환을 무시하고 파괴해 온 결과다. 산림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면서 탄소를 흡수할 방패를 잃었고 강과 하천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물이 스스로 조절할 여지를 없앴다. 그 대가로 우리는 폭우가 내리면 도시가 물에 잠기고 가뭄이 닥치면 식수난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배산임수는 과거의 전통이 아니라 미래의 생존 전략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 산림을 보전하고 하천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배산임수의 지혜는 단지 환경 관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반대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지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자연의 품 안에서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산임수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 터를 잡으려 했던 선조의 겸허한 태도를 보여준다.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과제이지만 그 해법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산과 물을 지키는 일,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삶의 터전을 다시 설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잊고 있던 오래된 지혜를 되살리는 일이다.

산림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대신 숲을 보전하고, 강을 직선으로 가두는 대신 물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돌려주는 것, 그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 말이다.

배산임수는 더 이상 옛 풍수의 구호가 아닌 기후위기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규범이다. 인간의 안전과 지속 가능한 미래는 자연과 멀어질수록 요원해진다. 반대로 자연에 기대고 그 흐름에 순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자연을 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아이들과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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