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프로젝트매니저(PM)가 모인 행사의 진행도 해야 한다.
행사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 당신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당신을 찾는 전화였다. 전화 속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가고 있다.”
그 목소리에 당신은 또 다른 ‘자신의 현실’을 자각한다. ‘어린 아이 둘을 낳고 키우고 있는 워킹맘.’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제일 먼저 찾는 존재가 엄마라는 것도 깨달았다.
누군가는 모든 일을 뿌리치고 아이한테 달려갔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부터 마무리하려고 했을 수 있다. 엄마이면서도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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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그가 맡았던 일은 아시아·태평양 PM들이 모인 행사의 진행자였다. 몇 주를 준비해온 구글코리아의 대형 행사였다.
행사 진행을 보던 이 매니저(이해민 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의 손가락 하나가 거의 잘렸다는 비보였다. 14개월 된 고사리 손가락을 다시 연결해줄 병원을 찾고 있다는 소식도 연이어 들려왔다. 당장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했다.
이 때 그는 직장에 남아 그날 일을 완수하는 선택을 했다. 죄책감에 마음은 타들어갔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퇴근 후 그가 병원에 갔을 때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그전부터 응급실에 있어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더 위급한 상황이라서 응급실을 잠시 나왔다.
천만다행으로 아이의 손가락 접합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전신마취를 한 채 핏줄과 신경, 뼈를 잇는 대수술을 했다. 이 매니저는 수술이 끝난 뒤 아이 옆에서 하룻밤을 꼬박 샜다. 그는 이때를 회고했다. “엄마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고비를 넘겼지만 또 다른 고비가 있었다. ‘두살배기 아이를 누가 돌봐야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남편도 본인도 어려웠다. 입사 몇 달 안된 회사에 장기 휴가를 요청하기 부담스러웠다. 당장 자리를 비우기 힘든 행사의 호스트(host)를 맡고 있었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출근한 그를 그의 외국인 상사가 불렀다. 상사는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모양인가?”라고 물었다.
질책일까, 상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은 사람이 살면서 일생 동안 한 번 겪을까말까 하는 상황이다. 너는 너의 가족 옆에 있는 상황이다.”
어안이벙벙한 이해민을 보고 상사는 다시 말했다. “네 마음 편해질 때, 그때 돌아와라.” 결국 이해민은 한 달 반을 쉬고 아이가 재활에 들어갔을 때 구글코리아로 복귀했다.
물론 모두가 그의 휴가를 이해해주진 않았다. 당장 회사 인사 쪽에서 불평이 나왔다. ‘호스트가 자리를 비우다니.’ 이해민 매니저 또한 어느 정도 질책을 각오했다.
6주 뒤 그가 복귀했을 때 그의 상사가 그를 불렀다. “지난번 병원 때문에 쉬었던 부분에 대해 누가 물어봐도 ‘나는 모른다’라고 대답해라. 그건 내 결정이고 내 판단이었다.” 실제로 그에게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이 매니저는 자신의 상사에게 물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된 신참에게 왜 그랬나요?” 그는 대답했다. “그것이 구글이 인재를 계속해서 다니게 만드는 방법이다. 누구든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훌륭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병원에 그러고 왔는데 과연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겠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지금 이해민은 17년 전 일도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정도가 됐다. 그는 “가장 퍼포먼스를 훌륭하게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일을 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단 이해민 의원만의 일일까. 2024년을 살아가는 많은 육아·일 병행 여성들도 동일하게 겪고 있다. 이들도 17년 전 이 의원처럼 불현듯 오는 어린이집, 유치원 전화가 가장 두렵다.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엄마로서 죄책감’을 온몸으로 겪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17년 전에는 한 외국계 회사가 그 답을 줬다면, 이제는 우리 사회와 기업, 정치권이 좀더 명확하게 답을 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