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두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국토보유세를 제안했다. 종합부동산세가 고가 부동산에 세금을 매긴다면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를 과세 대상으로 삼고, 토지 가격에 따라 일정 비율의 세금을 내는 제도다.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면 땅과 건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고, 땅이 없거나 1주택자는 세 부담이 적다. 이 후보 캠프 측은 전체 2200만 가구 중 90%인 1980만 가구는 국토세로 내는 세금보다 기본소득으로 돌려받는 돈이 더 많아 순수혜가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약 850만 가구는 국토세 부담이 0원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15일 자신의 SNS에 “토지보유 상위 10%에 못 들면서 손해볼까봐 반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며 “전국민 90%가 혜택보는 국토보유세를 누가 반대하는지 지켜보라”는 글을 남겼다.
이 후보는 지난달 29일 국민이 반대하면 국토보유세 공약을 철회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가, 지난 7일 서울대 금융경제세미나 초청강연회에서는 "90% 이상 국민은 내는 것보다 받는 게 많기 때문에 세금 정책이 아니라 분배 정책에 가깝다"며 "국민들을 설득해 동의를 받겠다"고 말했다. 또 “국토보유세로 대기업이 물건값을 올릴 지 모르지만, 그런 건 (국민에게 세금) 전가라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말 이 후보가 주장하듯 국토보유세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토지를 소유한 상위 10% 정도의 국민들이 순부담가구이고, 나머지 90% 국민들은 혜택을 보는 것일까?
토지 보유 상위 10%가 부담 -> 거짓
토지를 가진 국민에게 국토보유세를 거둬서 이를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과정만 보면 토지 상위 10% 정도가 비용을 부담하고 90% 정도가 혜택을 보는 것은 맞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경기연구원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규모에 맞게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 토지의 과표구간별 세율을 정해 총 거둘 수 있는 세액을 계산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국토보유세로 목표하는 세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법인 또한 세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법인에는 공공기관, 공기업이 포함돼 있어 걸국 국민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사기업도 국토보유세를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토지 사용이 불가피한 물류창고, 공장, 농업법인 등은 국토보유세가 도입되면 세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개인이 전체 토지의 75.9%를 소유하고 있고, 법인이 11.4%, 비법인이 12.7% 소유하고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농어업용시설, 학교, 병원, 어린이집 및 유치원, 노인복지시설, 교회, 공기업 등은 재산세 비과세·감면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재산세 비과세·감면 혜택을 폐지하거나 기존보다 세율을 높여야 이재명 후보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발표한 '국토보유세 도입 쟁점 검토' 보고서에는 국토보유세 도입했을 때 내야하는 국토보유세액 추정치가 나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보유세 도입으로 용도별 차등 과세가 폐지되면 한국수력원자력, 포스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서울대학교 병원의 토지보유세 부담은 12.5~35.7배까지 늘어나게 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2017년 토지보유세를 15억원을 부담했고, 영업이익은 224억원 적자를 냈다. 국토보유세를 적용하면 한국농어촌공사는 국토보유세로 518억원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인 보유 땅이 상당히 많은데 국토보유세로 세금을 올리면 법인의 세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며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세금으로 세금을 내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이는 국민에게 2차 부담을 주는 것”이라 말했다.
이 보고서의 추정치는 기본소득을 연간 30만원 지급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후보가 처음 주장했던 연 100만원 지급을 한다면 이 공기업들의 토지세부담은 현행보다 37.5배에서 최대 107.1배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예상 세액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그렇지만 법인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고, 최소한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세부담은 국민들이 부과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위 10%만 부담한다는 이 후보의 주장은 거짓이다.
사기업 또한 세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사기업에서 가격 결정력을 갖는 대기업은 소비자에게 가격을 전가할 수 있고, 가격 결정력이 작은 중소기업은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려워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태화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인은 최종적인 조세부담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기업은 주주, 노동자, 나아가 소비자까지 나눠서 부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송인만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도 “국토보유세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법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많아질 수 밖에 없고, 여기서 상당 부분은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