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채권이다. 채권임에도 통상 만기가 30년 이상인 장기물이기 때문에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분류된다.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의 차이는 자본인정비율에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기본자본으로, 후순위채는 보완자본으로 구분돼 시간이 흐르면 자본인정비율이 낮아진다.
국내 금융사들 중에서는 보험사들이 가장 활발하게 자본성증권 조달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하반기 본격적인 금리 인하로 인해 보험부채가 증가했다. 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은 만기가 길어 부채의 금리 민감도가 높다. 이에 따라 건전성 지표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NICE(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등 보험사들이 발행한 자본성증권의 규모는 총 4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 규모다.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2000억원), 교보생명 신종자본증권(6000억원) 등이 발행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총 5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보험사의 킥스 비율이 크게 하락하자 자본성증권 발행이 대폭 늘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킥스 평균 비율은 생명보험사 196%, 손해보험사 193%로 190%를 상회했으나, 올해 6월 말에는 생명보험사 185.9%, 손해보험사 180.7% 등 180%대로 낮아졌다. 6개월 만에 생명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은 10%포인트(p), 손해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은 12.3%p 하락한 것이다.
정원하 NICE신평 연구원은 “자본적정성 관련 규제 강화로 업권 전반적으로 자본적정성 관리 부담이 증가한 가운데, 향후에도 금리 인하 등으로 인해 보험사의 자본적정성 관리 부담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각 사의 자본적정성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자본성증권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이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5회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서도 총 183명의 응답자들이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증권 발행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 3.97점(5점 만점)을 줬다. 직군별로는 크레딧 애널리스트(CA)가 4.03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줬으며, 뒤 이어 매니저(MG) 3.94점, 연기금 관계자나 금융투자업계 리스크 관리 담당자, 심사부 담당자 등이 속한 기타 응답자 3.92점 등의 순이다.
◇ ‘부정적’ 꼬리표 비금융 기업, 자본성증권 조달하기도
비금융 기업들도 자본성증권 발행이 점차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재무건전성 관리가 필요한 기업들이 높은 금리를 부담하면서 자본 확충용으로 자본성증권을 활용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에서 비금융 기업은 자본성증권을 총 4조6640억원어치 발행했다. 지난해 연간 발행액(1조7115억원)의 2배를 넘어선 규모다.
실제로 등급전망에 ‘부정적’ 꼬리표를 단 기업들이 신용도 방어를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지난 6일 풀무원 계열사인 풀무원식품은 30년 만기 3년 후 콜옵션 조건으로 총 4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다. 수요예측 결과 일부 미매각이 발생했으나, 이후 추가청약 과정에서 6.2%의 고금리를 내세워 남은 물량을 모두 소진했다. 풀무원식품은 해외사업을 위한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면서 자본적지출(CAPEX)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 부담으로 인해 회사채가 아닌 신종자본증권을 선택한 셈이다.
뒤이어 이마트24도 오는 11월 말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을 세웠다. 총 1000억원 규모를 조달하는데 모회사인 이마트가 보증에 나선다. 희망 금리 밴드로는 4.7%~5.1%의 금리 수준을 제시했다.
수요예측 부담이 없는 사모 시장을 통해 신종자본증권을 조달하기도 한다. 에코프로비엠(3360억원), CJ대한통운(2500억원),HD현대오일뱅크(2500억원), 코오롱인더스트리(2500억원), 롯데지주(1500억원) 등이다.
SRE자문위원은 “최근 자본성증권을 발행했던 일반 기업들을 보면 신용등급 아웃룩이 ‘부정적’인 곳이 대부분”이라며 “신평사가 자본성증권의 경우 평가 시 일부만 인정하다 보니 일단 대규모로 발행하기도 한다. 등급 방어용으로 볼 수 있어 의도가 불순하다”고 꼬집었다.
김종훈 한기평 연구원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자본비용 절감 등 다양한 경제적 유인이 있을 수 있으나, 자본확충을 통한 재무레버리지 개선이 가장 결정적인 발행 유인”이라며 “높은 금리 부담에도불구하고 재무구조 보완 필요성이 큰 기업들이 지분 희석이 없는 자본 확충 수단으로 신종자본증권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자본성증권은 예금 금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금리로 개인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투자처로 꼽힌다. 최근 채권시장에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해 미매각 물량까지도 소화하는 모습이다.
SRE 설문에서도 ‘채권 시장에서 개인투자자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은 3.68점을 줬다. CA가 3.8점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어 ‘A급 이하 비우량채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3.10점을, CA의 경우 3.32점을 매겼다.
SRE자문위원은 “일반 기업이 사모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때 인수단에서 가장 많이 물량을 가져간다”며 “망하지 않을 기업이라고 생각이 들면 6~7%대 높은 금리로 사고, 마진 스프레드를 먹으면서 보유하다가 100bp(베이시스포인트·1bp=0.01%포인트) 가량 되는 수수료를 받으면서 리테일에 판매하는 구조”라고 했다.
◇ “자본의 질적 수준 모니터링할 것”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해 자본적정성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것은 신용평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콜옵션 조건으로 인해 자본성증권의 실질 만기가 통상적으로 3~5년에 불과하다. 또 자본성증권 발행 시 이자와 배당 부담 증가로 인해 유보이익이 감소한다는 점은 자본적정성 지표 개선 효과를 제약한다.
이에 따라 신평사들도 자금조달 역량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정원하 NICE신평 연구원은 “자본성증권 발행에 따른 지급여력비율 유지 여부와 함께 자본의 질적 수준 및 금리 부담 수준 또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며 “개별 회사별 자본성증권 발행 한도 소진율이 상이하며, 자본시장 접근성도 업체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적시에 필요한 규모의 자금을 금융시장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는 전반적인 외부 자금조달 역량에 대해서도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신용등급 방어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SRE자문위원은 “보험사 등 금융사의 경우 자본성증권이 각종 레이팅(지표)에 반영이 되지만 일반 기업은 사실상 거의 반영이 되지 않는다”며 “제일 중요한 게 결국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인데 자본성증권의 경우 20% 등 일부만 인정해서 계산하며, 부채비율 정도에만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5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