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감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획일적인 규제와 처벌 위협은 최소한의 안전 기준만을 충족하려는 경향을 유도할 뿐 자발적인 장기적 안전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안전 선진국들은 전혀 다르게 접근한다.
영국의 안전보건청(Health and Safety Executive·HSE)은 자발적 준수와 예방 중심 정책을 통해 기업들이 스스로 안전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한다. 재정적 인센티브와 교육을 통해 위험성을 평가하고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지원한다.
독일의 배려 기반 안전관리 정책 역시 법적 규제와 함께 재정적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 설비에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안전 기술의 발전을 지원하고 보험료 감면 등 재정적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기업들이 예방적 안전관리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하게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면서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과 기술 지원을 병행한다. 중소기업에 대해선 저리 대출과 보조금을 제공하며 안전 설비 도입을 장려한다.
미국도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OSHA)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관리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와 지침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발적 보호 프로그램’(Voluntary Protection Programs·VPP)이다. OSHA가 지정한 엄격한 안전 기준을 자율적으로 충족한 우수 사업장에 대해선 인증시스템을 통해 스타(Star) 등의 등급을 부여하고 정기적인 안전 검사 면제, 안전관리 시스템 설계 및 운영에 대한 교육과 기술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참여 기업은 산재 감소로 생산성 향상과 보험료 절감의 효과도 누리게 된다. 일부 주에서는 안전 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자. 안전보건 확보 조치 불이행과 중대재해 사이의 인과관계 고리가 결여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3년이 되기도 전에 종이호랑이가 되고 있다. 안전의 패러다임 전환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을 처벌 위주에서 예방 투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첫째, 안전투자세액공제제도를 복원하고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한편 안전관리 성과가 우수한 기업은 추가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유럽연합(EU)의 ‘공급망실사지침’ 시행에 대응해 대기업은 안전관리가 부실한 협력업체와는 거래하지 않도록 하고 중소기업에 대해선 보조금과 융자 지원을 통해 안전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것도 필요하다.
셋째, 안전시스템과 설비 인증을 받은 기업에는 산재보험료 감면과 세액공제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사업주 의무사항을 준수한 사업주 면책을 제도화하면 기업의 자발적인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의 핵심은 재해 예방이다. 재정적 인센티브와 기술 지원 등 예방 중심 정책을 강화해 안전 투자 촉진과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 안전보다 중요한 민생이 어디 있겠는가. 국회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