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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중 핵심적인 사항이다. 애초 CJ대한통운은 “다른 택배사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심야배송 문제에 연루된 적 없다”면서 이런 후속조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권이 있었다’며 떠밀리듯 롯데글로벌로지스(작년 12월 시행) 등 경쟁사들보다 뒤늦게 앱을 수정했지만, 이마저도 ‘백도어’(뒷구멍)를 훤히 열어둔 채였다.
기종이나 버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네 단계만 거치면 일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설정에 들어가 ‘자동’으로 설정된 날짜 및 시간을 밤 10시 이전으로 조정하면 끝이다. 손에 익으면 1~2초면 충분하다. 앱이 인식하는 시간을 속여 ‘탈옥’(잠금 해제)하는 간단한 원리다. SM앱이 본사 전산 서버 시간이 아니라 택배기사 휴대전화 시간에 연동하는 허점이 있기에 가능하다.
한 산업보안 전문가는 “(CJ대한통운이)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조금만 신경 썼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같은 사실은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특히 설 명절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많은 택배량를 소화해야 하는 기사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우회로를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 배송 택배를 일단 배송완료 처리해두고 나중에 전달하면 고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그런 걱정을 덜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라며 극구 부인하던 CJ대한통운은 취재가 시작되자 “15일부로 해당 편법으로 앱이 구동되지 않도록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시인했다. 이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스마트폰 시간 조작을 통한 비정상 배송 사례가 얼마나 만연한지에 대해선)건건이 모니터링하지 않아 알 수 없다”고 감추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택배기사한테 책임을 돌리는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정말로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척했다면 뻔뻔한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누구의 잘잘못이냐를 떠나 부족한 부분을 함께 보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2일 열리는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 등을 포함해 총 9명의 증인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연이은 택배기사님들의 사망에 대해 회사를 맡고있는 대표이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서도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현장 상황을 세밀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지 되묻고 살펴보고 있다. (재발방지) 대책은 대표이사인 제가 책임지고 확실히 실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