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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법관, 민일영 전 대법관(연수원 10기·60)은 대법관을 다시 하라면 안하겠다고 했다. “힘들어서 안 한다. 다시 하면 시체가 돼 나올지도 몰라 허허”
9월에 퇴임하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지 두달 째다. 인터뷰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실에서 했다. 대법관 재임 시절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면서도 틈틈히 고전을 읽은 이유를 물었다. 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천 년 전을 살았던 사람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궁금했다.
“공자가 한 말을 우리가 지금 왜 들어야 하느냐고 한다. 현대의 서양인이 동양의 옛사람 공자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대로 된 정신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책을 읽고 마음을 수양해야 한다. 요즘은 너무 단편적인 것을 찾는 거 같아 안타깝다.”
그는 ‘탈바꿈의 동양고전’이라는 책을 내밀었다. “동양 고전의 진수를 뽑아서 정리했다. 참 잘 썼다. 정말 추천한다.”
책은 손때를 탄 흔적이 여실했다. 여기저기 접힌 페이지들로 인해 두터웠다. 이렇게 표시를 해 두면 책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펼 수 있어서 좋단다.
바쁘게 사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기도 하다. “마음잡고 사서삼경 읽으려면 한 달도 더 걸린다. 이 책은 핵심만 뽑아서 쉽게 쓴 게 장점이다. 없는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봐야할 좋은 책이다.”
옛것에서 새것을 찾으려는 그의 시선이 꽂힌 또 다른 곳은 판소리다. 민 전 대법관은 알아주는 판소리 예찬론자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보고 판소리에 빠졌다. 2005년부터 한 주에 한 번씩 소리를 했다. 올해로 11년째다. 판소리는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살아 있는 소리다. 이게 매력이다. “조선 시대에 불렀다고 죽은 소리가 아니야. 같은 사람이 불러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사무실과 바닷가에서 부르는 게 달라”
실제로 판소리는 동편제가 다르고 서편제가 다르다. 어느 선생한테서 창을 사사한 지에 달렸다. 그렇다고 ‘저건 맞고 이게 틀렸다’식으로 선을 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는 가사가 하나밖에 없고 서양 교향곡은 음표 하나 틀리면 난리가 난다. 판소리는 아니다. 틀려도 틀린 게 아니다.” 다양성의 공존을 포용하는 것은 판소리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는 ‘판소리 교주본’(校註本)을 탐독하며 다름의 차이를 탐구한다. 책은 최동현 군산대 교수가 제 각각인 판소리 사설(辭說·창을 쉬는 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읽어나가는 대목)을 엮어 각주를 댔다. 한자와 고어가 많아 어려운 판소리를 쉽게 풀어쓴 것이다. 판소리 초보자라면 적벽가 사설 대신 삼국지를 먼저 읽는 게 낫다.
민 전 대법관은 판소리의 난해함이 대중화에 걸림돌이라고 했다. “쉬운 판소리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일반인이 판소리를 쉽게 접할 텐데. 역량이 되면 판소리 사설을 쉽게 다듬고 싶다.” 허투루 한 말은 아니다. 단가 강산풍월(江山風月)을 쉽게 고쳤더니 모 명창이 “보급해도 되겠다”고 했단다. ‘판결문 쉽게 쓰기’를 강조하던 현역 시절 모습과 맞닿아 있다. 좋은 직업병이다.
민 전 대법관은 흥보가 완창이 목표다. 화초장 대목이 제일 좋단다. “재밌다. 판소리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 재벌가 형제의 재산 다툼이 흥보가랑 다를 게 있나. 사랑을 노래한 유행가는 열녀 춘향의 사랑 타령이 원조다. 우리 현실과 떨어진 게 아니다.”
수백, 수천년을 묵었지만 ‘생물’(生物)이라는 점에서 고전과 판소리는 통한다. 민 전 대법관은 고전을 읽으며 인간의 노력을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대법관 퇴임사에서도 인용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을 으뜸으로 친다. ‘심성구지 수부중 불원의’(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진실로 구하라. 비록 정확히 맞지는 않더라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활을 대충 쏘면 화살이 엉뚱한 데로 날아가지만, 정조준하면 10점을 못맞혀도 7~8점은 얻는다. 오늘을 대충 보내면서 좋은 결과 얻으려고 하면 백날이 지나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민 전 대법관의 조언이다.
민 전 대법관이 판소리와 연을 맺은 것도 ‘심성구지 수부중 불원의’ 덕이다. 법원 행사에 초청하려고 생면부지인 임권택 감독에게 편지를 쓴 게 계기였다. “편지를 쓰려고 영화 서편제를 네 번이나 봤다고 했더니 임 감독이 감동해 연락을 해왔다. 이후 내리 판소리에 빠져 살았다.”
민 전 대법관은 고전과 판소리를 고속도로 휴게소에 빗댄다. “종일 운전만 하면 피곤하다. 휴게소에 들려 우동 한 그릇 하면 졸음도 달아나고 좋다. 사건 기록에 묻혀 살던 내게 고전과 판소리는 휴게소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지난 32년은 휴게소에 들러야만 쉴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쉬는 것처럼 쉬고 싶단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다시 돌아가면 재판 더 잘할 거 같다. 상고심 말고 사실심 재판. 더는 (재판) 못하겠지만…” 방금까지 대법관도 다시는 못하겠다며 이제는 쉬고 싶다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천생 판사다.
▲경기 여주에서 태어난 민일영 대법관은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0년 사법연수원을 10기로 수료했다. 1983년 서울민사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청주지법 충주지원장,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청주지법원장을 거쳐 2009년 9월 대법관에 올랐다. 지난 9월 퇴임하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