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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에도 기념관을 운영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980년대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에 집중했다. 특히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문실로 쓰였던 5층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직원들이 내가 수차례 설명해도 왜 자신이 고문당했던 곳을 복원하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더라. 하지만 아픈 기억은 없애는 게 아니라 기억하면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며 “원형을 보존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나를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5층에서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물건들을 엿볼 수 있었다. 고문에 쓰인 칠성판, 주전자, 멍석, 조사실 내부 감시장치인 ITV 등이 전시돼 있으며, 1987년 박종철 열사가 명을 다한 509호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당시 민주화 열사들이 한명씩 들어가 있었던 공간이다. 피의자가 도주하는 걸 막기 위해서 계단도 조사실과 똑같은 출입문으로 위장했고, 16개의 출입문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했다.
옛 대공분실을 벗어나면 민주주의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전시실도 마련돼 있다. 1960년대 민주항쟁의 포문을 연 ‘2.28 대구 민주화운동’부터 4·19 혁명, 6·10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11건의 사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물론 개관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당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측은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을 기념관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해당 건물의 용도가 한정적이라 차선책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택하게 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출범한 지 25년 만에 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주최 측은 특히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념관이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민주화 운동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세대인 만큼, 이곳을 산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청소년 민주주의 학교나 교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 강좌 등이 개설될 것으로 보인다. 주말에는 전문 무용수들이 해설을 곁들여 도슨트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재오 이사장은 “최근 청소년, 청년이 극우화됐다는 말이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말로 그런 경향이 있더라도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공간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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