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과다한 업무량과 스트레스로 인해 과로사하거나 심뇌혈관 질환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된다. 만약 본인이 이에 해당한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심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법령은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 본인에게 입증 책임을 묻고 있어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심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인정받기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과도한 근로시간·만성 스트레스가 심뇌혈관 질환 유발
이에 현직 대학병원 교수가 여러 임상연구를 문헌 고찰해 현재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이 과학적으로 합리적이고 타당한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표준 근로 시간보다 과도한 근로 시간은 심뇌혈관 질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하고 있는 주 평균 60시간 이하의 근로 시간에서도 심뇌혈관 질환이 증가했다. 과도한 근로 시간 외에도 ▲업무와 관련된 만성 스트레스도 심뇌혈관 질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를 진행한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업무상 스트레스·과로가 심뇌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최근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었는데 이를 통해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및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업무상 재해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여러 임상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과도한 업무량이나 직무상 스트레스와 관련된 업무상 재해의 법령 기준에 대하여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법령 과학적 근거 부족… 합리적 기준 재정립 필요
그렇다면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고시하는 있는 기준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발병 일주일 전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되었을 경우 심뇌혈관 질환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는 조항은 객관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막연히 30% 이상 증가하였다는 식의 정량적 표현은 업무의 양이나 시간에 한정되는 것으로 스트레스의 강도를 평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 시간이 주당 60시간 이상인 경우 관련성을 제시하는 것도 객관적 근거가 없다. 주당 48시간 이상에서도 심뇌혈관 질환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업무와 심뇌혈관 질환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명백하면’이란 단서를 달고 있는데 의사들도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를 근로자 스스로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명백하면’ 이란 표현 대신에 좀 더 완화된 문구가 필요하다. ▲현재 법령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심뇌혈관 질환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여러 임상연구를 통해 스트레스가 주요한 요인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좀 더 면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박창범 교수는 “국가가 현재까지 발표된 여러 임상연구들을 바탕으로 좀 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 근로자들이 억울하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더불어 과로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근무 환경이나 조직문화 또한 개선해 나가려는 사회적 문화가 성숙하게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 법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 외법논집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