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부족으로 제조업체 곤경

김홍기 기자I 2000.05.19 13:56:08
반도체와 같은 핵심 부품의 부족으로 인해 전자제품 제조업체가 아닌 부품 공급업체가 주도권을 쥐는 방향으로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다고 비즈니스위크가 최근호에서 전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작년 12월 휴렛 패커드는 컴퓨터 서버의 주요 생산라인을 폐쇄하느냐로 고민을 했다. 2000달러 정도에 팔리는 고마진 제품이었다. 이유는 단가가 2센트에 불과한 전기를 모으고 저장하는 조그만 장치인 capacitor의 부족 때문이었다. 휴렛 패커드의 구입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인터넷에서 10만개의 부품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높은 프리미엄에 팔았다. 서울에서 실리콘 밸리에 이르는 전 세계의 첨단기술 회사들이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네트워킹 기기 등에 대한 전 세계의 수요 급증이 반도체 공장들이 생산하는 용량을 초과하고 있다. 메모리 칩이 가장 취약하고 LCD 스크린과 다른 주요 부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제조 원가를 인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제조업체들은 수입 목표치를 낮춰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모토로라와 시스코 시스템스를 포함한 대기업들이 비용 증가를 고객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해 버텨왔다. 그러나 부족현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면, 일부 기계와 소비 제품의 가격이 이 문제를 반영하기 시작할 것이다. 시스코와 같은 경우도 공급선에 부품을 더 많이 생산하거나 할당해달라고 강요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시스코에 대한 플래시 메모리 할당량을 50% 늘렸다. 그러나 삼성의 정유용 칩 마케팅 디렉터는 “시스코의 요구하는 것의 70%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반도체 산업이 최악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투자를 삭감했다. 칩을 쓰는 PC 제조업체등이 무자비하게 가격을 깎았다. 그러자 반도체 공급업체들이 투자를 줄였다. 현재 프로세서 부족에 직면해 있는 인텔 조차 투자를 삭감했다. 인텔의 최고경영자인 크레이그 바레트는 “회상해볼 때 작년에 투자를 적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 9월부터 반도체 업체들의 투자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용량이 늘어나는데는 12~18개월이 더 걸리기 때문에 오늘날의 부족현상은 올해 더 악화될 것이다. 부품 부족이 일부 기업의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부품의 가격 인상이 모토로라의 수익 마진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쳐 주가는 3월초 184달러에서 10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시스코의 경우, 지난 9일 CEO인 존 챔버스가 부품 문제가 장래의 수입 증가속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주가가 9%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주요 기업중 실제로 성장 전망을 밑돈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날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프루덴셜 볼페 테크놀로지 그루브이 애널리스트인 피트 피터슨이 말했다. 그는 주가가 크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품 부족이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제조업체와 공급업체의 힘의 균형에 이동이 생기고 있다. 닛코 살로먼 스미스 바니 증권의 전자 애널리스트인 후지노 마사미는 “수요가 공급을 웃돌면서 부품 메이커가 막강한 힘을 가졌다”며 “그들이 실제로 제조업체의 시장 점유율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체중 패닉상태에 빠지는 곳은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 부족현상은 매우 빨리 완화되기 때문이다. 프린티드 서킷 보드가 그렇다. 그러나 보드 생산은 끔찍할 정도로 복잡한 것도 아니며 자본 집중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 생산을 증가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일본의 디지털 전화와 자동차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생산하는 마쓰시다 통신산업은 휴대폰에 쓰이는 소형 액정 디스플레이의 부족이 통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아마도 올해 말까지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품 부족이 도매 가격을 올리고 있다. 모토로라와 에릭슨은 어느 곳에나 쓰이는 capacitor와 플래시 메모리 칩을 포함한 일부 휴대폰 부품이 정상 가격보다 4~10배 올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품 부족이 가격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시장 점유율 상실을 우려한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가격 인상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부품가격의 인상이 전자 산업의 길을 변화시키고 있다. 몇 년간의 고통 끝에 삼성전자는 1분기에 수익이 4배나 급증했다. 대부분의 수익은 메모리 부품 판매에서 비롯됐다. 전자상품 수요는 작년에 폭발했다. IC 인사이츠의 빌 맥클레인은 “휴대폰 판매는 올해에도 작년보다 60% 급증한 4억4000만 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산업이 이러한 수요를 맞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인텔은 올해에 새로운 설비와 공장을 짓기 위해 60억 달러를 쓰고 있다. 전 세계의 반도체 메이커들은 지금까지 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용량 증가는 적어도 2년 이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제조업체들은 조립 라인 가동 유지를 위해 구걸하고나 (부품을) 빌려야만 할 것이다. <참고> 반도체 산업은 3년 사이클로 상승-하향 곡선을 그린다. 피크가 다가오고 있다. 수요 증가로 반도체 판매가 올해에 32% 늘어날 것이다. 전원이 꺼졌을 때에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플래시 메모리 칩 판매는 올해에 110% 증가할 것이다. 작년에 2005년까지 전 세계의 휴대폰 사용자가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2002년이면 아마도 10억 명을 추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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