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판교밸리의 선순환을 그리며[공관에서 온 편지]

김인경 기자I 2026.01.27 05:00:00

실리콘벨리 심장부에 韓 스타트업 거점 들어서고 있어
사무공관 넘어 K스타트업 전초기지로 자리잡아
인재 유출 우려도 있지만 국내로 되돌아오는 선순환 기대
재외공관도 현장 허브이자 연결자로 역할할 것

[임정택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샌프란시스코의 아침 풍경은 여전히 역동적이다. 자율주행차 웨이모가 도로를 오가고 미션베이나 소마 지역의 카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두고 토론하는 창업가들로 북적인다. 익숙한 장면이지만 그 안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분명한 변화가 감지된다. 실리콘밸리를 관할하는 공관장으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우리 스타트업의 분위기나 기세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임정택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사진=외교부)
최근 들어 실리콘밸리 심장부에는 한국 스타트업을 위한 거점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말 문 연 ‘마루 SF’와 ‘IBK창공’에 이어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부의 ‘K-스타트업·벤처 캠퍼스’까지 가세했다. 한국계 벤처캐피털들도 현지 오피스를 확장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단순한 사무 공간을 넘어 숙식과 네트워크, 투자 연계까지 책임지는 ‘K스타트업 전초기지’가 실리콘밸리 곳곳에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모양새다.

한인 스타트업 행사의 분위기와 위상 역시 달라졌다. 실내 콘퍼런스 중심이던 ‘UKF-82스타트업 서밋’은 이제 30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로 성장했다. 야외 공간에서 현지 커뮤니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실리콘밸리라는 거대한 흐름 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한국에 제2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자”는 구호가 유행했다면 이제는 실리콘밸리 현지에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식돼 제2의 판교밸리가 형성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AI 붐을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 어디서든 우리 젊은 창업가들의 열정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물론 이를 두고 국내 유망 인재와 기업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모습은 단순한 ‘떠남’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강점은 기술 그 자체보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는 문화, 빠른 실험과 개방적 협업의 DNA에 있다. 현지에서 체득한 혁신의 DNA가 다시 국내로 전파되고 그 성과가 한국 경제와 지역 창업생태계로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은 정부가 앞에서 이끄는 시대를 지나 민간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재외공관과 현지 지원기관의 역할 역시 달라져야 한다. 공공기관은 앞에서 끌기보다 민간이 필요로 하지만 혼자서는 채우기 어려운 영역을 뒷받침하는 조력자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

재외공관은 공공부문의 중심 기관으로서 단순한 외교·행정 창구를 넘어 현장 정보의 허브이자 기관 간 연결자 역할을 해야 한다.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이 지난해부터 유관기관과 원팀 협의체를 구성하고 실리콘밸리 진출 가이드북 발간, 주 정부 초청 행사, 현지 투자유치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관 간 중복을 줄이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이제 우리 스타트업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이동’이 아닌 ‘확장’으로, ‘이탈’이 아닌 ‘연결’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이곳에서 자란 성과가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는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실리콘밸리의 밤을 밝히는 우리 창업가들의 불빛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도록 공관장으로서 그 위대한 여정에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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