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전 전쟁·기후위기·코로나19·AI 발전 "예측 어려운 미래, 정답 제시 대신 공감" 거대 원형구조 내 영상 설치 작품 선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전쟁과 기후위기, 코로나19 대유행,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등 거대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미디어 아티스트 함양아(58)는 지난 8년간 이 질문을 탐구해왔다. 그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가 오는 10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사진=아트선재센터).
이번 전시는 함 작가가 2018년부터 진행해온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사회와 개인, 공동체를 오랜 화두로 삼아온 작가의 작업 세계가 어떻게 확장돼 왔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함 작가는 “현재는 이해하기 쉽지 않고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며 “예술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불안을 이야기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해온 작업은 결국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과정이었다”고 부연했다.
전시의 중심에는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이 있다. 거대한 원형 구조 안에 8채널 영상이 펼쳐지는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파도가 치는 바다, 땅을 파는 사람의 모습, 장례를 치르는 행렬 등이 차례로 지나가며 개인의 삶과 거대한 사회의 흐름이 하나의 풍경처럼 펼쳐진다. 관람객은 원형 공간 안을 직접 걸으며 인간과 자연, 사회가 하나의 순환 구조 안에서 서로 연결돼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함 작가는 “세상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대신 관람객이 작품 속에 들어와 다양한 관계를 직접 느끼길 바랐다”면서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층에는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이 전시돼 있다. 이번 신작에 앞서 국가와 정치, 경제 등 사회 구조를 다룬 작품이다. 영상에는 벽을 허무는 인부들과 검은 양복 차림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들의 모습 위로 정부 조직도가 겹쳐지고, 나무와 흙으로 채워졌던 배경은 어느새 빽빽한 도시 풍경으로 바뀐다. 이어 곳곳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함양아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사진=아트선재센터).
또 다른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는 세계 각지 사람들이 웹사이트에 남긴 사적인 기록과 고백을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폭염 속 일상을 살아가는 네덜란드 청년과 국내 거리 예술가 등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13개의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온다. 남서원 큐레이터는 “가자지구를 떠나온 팔레스타인 여성은 집이 폭격당한 경험 등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준다”며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결국 전쟁이라는 세계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 작품 ‘잠’(2015~2016)도 만나볼 수 있다. 2014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작한 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재난 앞에서 무너지는 사회와 그 안에서 개인이 겪는 두려움을 담아냈다. 체육관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과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인물들은 재난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