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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0개 점포에 매출 절반 쏠림…백화점 호황, 소비 양극화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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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진 기자I 2026.09.04 04: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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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신세계 강남점 매출 52%가 VIP
명품 열기 식으면 내리막길 불가피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등 저변 넓혀야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한때 명품은 갤러리아백화점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여행길이 막히고 명품 ‘보복소비’가 폭발하자 2022년 5개 점포 총매출은 사상 처음 3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명품 열기가 식자 분위기는 빠르게 뒤집혔다. 2023년 3조원 선이 무너진 뒤 내리막은 계속됐다. 지난해 5개 점포 총매출은 2조 7099억원까지 밀렸다. 3년 만에 3700억원가량 줄어든 셈이다. 명품관과 타임월드점 등 5개 점포가 예외 없이 역신장했다.

국내 백화점이 다시 호황의 한가운데 섰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0.1% 뛰었고 신세계 강남점은 연매출 4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소수 초대형 점포로의 쏠림과 명품·VIP 의존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지금의 성과를 산업 전체의 호황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구조적 약점을 손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사진=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사진=신세계백화점)


“매출 늘었는데 절반이 역성장”…원인은 ‘타운화’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AK 등 5대 백화점 65개 점포의 합산 거래액은 40조 4402억원으로 전년보다 3.4% 증가했다. 하지만 65개 점포 가운데 37곳은 오히려 역성장했다. 상위 10개 점포가 전체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2%에서 2023년 44.9%, 지난해 49.8%까지 뛰었다. 시장은 성장했지만 매출의 절반이 불과 10개 점포로 몰린 셈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런 격차의 원인을 ‘타운화’에서 찾는다. 신세계 강남점은 반포 일대 재건축에 따른 초고소득 소비자 유입과 고속버스터미널의 유동인구를, 롯데 잠실점은 송파 일대 재건축 효과와 대규모 상권을 등에 업었다. 서 교수는 “상위권 점포의 성장은 상권 자체의 구조적 우위에서 기인하는 반면 이런 입지적 이점이 없는 지방·중소도시 점포는 콘텐츠나 마케팅 노력만으로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게임의 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경쟁에서 밀린 점포의 퇴출은 이미 시작됐다. 롯데백화점 분당점은 지난 3월 임대 계약이 2030년까지 남았는데도 27년 만에 문을 닫았다. 앞서 롯데 마산점과 현대 디큐브시티점, 그랜드백화점 일산점 등도 영업을 종료했다. 백화점들이 전국 점포망을 유지하기보다 강남·잠실·판교 등 수익성 높은 핵심점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중소형·지방 점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런 양극화를 억지로 되돌리기보다 점포별 역할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게 서 교수의 제언이다. 핵심점은 대형화·랜드마크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되 중소형점은 같은 경쟁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수요에 맞게 규모와 기능을 재편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리하게 폐점하기보다 규모를 줄여 ‘동네 프리미엄 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짚었다.

명품이 떠받친 호황…VIP 매출 비중 첫 52% 돌파

호황의 내용도 마냥 안심하기 어렵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의 명품 등 해외유명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0.8% 뛰었다.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 조사를 보면 2024년 글로벌 명품 유통시장에서 브랜드 단독 매장 비중은 36%인 반면 백화점은 13%에 그쳤다. 한국은 이와 달리 명품 유통이 백화점에 집중된 구조라고 한화투자증권은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신세계 강남점은 전체 매출의 약 40%가 명품에서 나온다.

고객 구성에서는 소비 양극화가 더욱 선명하다. 강남점은 올해 처음 VIP 매출 비중이 52%를 넘어섰고 VIP 매출 자체도 전년보다 8% 이상 증가했다. 불황에도 소비 여력이 큰 고액자산가가 백화점 성장을 주도하는 구조가 한층 강해진 것이다. 서 교수는 “경기 불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초고액 소비자가 매출을 떠받치는 구조”라며 “지금의 백화점 호황은 경기 회복이라기보다 소비 양극화의 산물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명품과 VIP가 잘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명품 브랜드의 출점·가격 전략이나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 흐름에 실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리스크다. 최근 급증하는 외국인 매출 역시 환율과 방한 관광객이라는 외부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앞서 갤러리아가 명품 호황이 꺾인 뒤 고전했듯 특정 상품과 소비층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시장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충격을 키울 수 있다.

서 교수는 호황인 지금이 오히려 명품 의존도를 낮출 적기라고 강조했다. 명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F&B·리빙가전·웰니스·K컬처 등 백화점이 직접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을 함께 키워 매출원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명품이 여전히 핵심 캐시카우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장기적인 리스크 분산을 위해 비명품 카테고리의 매출 비중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컨템포러리 럭셔리와 K뷰티,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등으로 중산층과 젊은 세대까지 고객 저변을 넓히는 것도 대안으로 꼽았다.

대구백화점 본점 전경. (사진=연합뉴스)
대구백화점 본점 전경. (사진=연합뉴스)


체험형 투자 여력은 상위권뿐…격차가 격차를 부른다

문제는 경영이 어려운 점포일수록 반전을 위한 투자마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에 마지막으로 남은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9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2021년 동성로 본점 영업을 중단하고 대백프라자만 운영하고 있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결국 경영권과 주요 부동산을 시장에 내놨고 올해도 경영권 매각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지역 상권을 대표했던 향토백화점이 생존 자체를 고민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백화점의 생존 공식은 그 어느 때보다 ‘투자’를 요구한다. 해외 직구와 온라인 명품 플랫폼, 리셀 시장이 성장하면서 같은 상품을 파는 것만으로는 고객을 점포까지 불러들이기 어려워졌다. F&B와 문화·체험 등 직접 방문해야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중요해졌지만 이를 만들 자본과 인기 브랜드를 끌어올 협상력은 상위권 점포일수록 강하다.

대형점은 늘어난 매출을 리뉴얼과 신규 콘텐츠에 다시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과 브랜드를 더 끌어모을 수 있다. 반면 매출이 줄어든 중소형점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다시 고객이 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매출 격차가 투자 격차로, 투자 격차가 다시 매출 격차로 번지는 구조다. 대구백화점처럼 경영난이 장기화하면 새로운 콘텐츠에 승부를 걸 여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서 교수는 투자 여력이 부족할수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봤다. 모든 상품군을 갖춘 ‘축소판 백화점’으로 대형점과 경쟁하기보다 한 분야에서 확실한 방문 이유를 만드는 전략이다. 그는 “중소형 점포는 대규모 자본 투자가 어려운 만큼 소규모라도 확실한 ‘킬러 콘텐츠’ 하나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며 “한국 백화점은 지금 초대형 점포의 글로벌화와 중소형 점포의 생존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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