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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회복한 사례도 많지만 모든 자산이 같은 속도로 반등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장기투자는 오래 기다리면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투자기간과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상황이 어려워도 흔들리지 않을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은퇴가 가까운 사람과 앞으로 수십 년을 납입할 청년에게 같은 답을 권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락이 두려워 상품을 팔고 나면 당장의 불안은 덜 수 있다. 대신 언제 다시 투자할 것인지라는 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시장의 바닥은 지나고 나서야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경제가 좋아지고 불안이 사라진 뒤에야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으면, 정작 반등의 중요한 구간을 놓칠 수 있다. 노후를 준비하는 연금에서 필요한 것은 단기 전망에 대한 확신보다 흔들리는 시간을 통과할 원칙이다.
장이 꺾일 때일수록 빛을 발하는 가장 믿음직한 무기는 바로 ‘적립식 투자’다. 매월 일정한 금액을 묵묵히 부어나가면 주가가 비쌀 땐 적은 수량을 사고, 반대로 주가가 내려앉았을 땐 같은 돈으로 훨씬 많은 수량을 쓸어 담게 된다. 하락장에서 납입을 멈추면 바로 그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물론 적립식 투자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자산 가격의 하락 위험 자체를 없애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공포에 휩쓸려 고점에서 사고 저점에서 털고 나오는 치명적인 투자 실수를 막아주는 가장 훌륭한 안전장치임은 분명하다.
투자 기간을 지키려면 투자 대상도 넓혀야 한다. 한 나라나 특정 산업에 집중된 자산은 그 시장이 흔들릴 때 함께 타격을 받는다. 글로벌 주식과 채권에 나누어 투자하고 배당과 분배금을 재투자하면 위험의 집중을 줄이면서 장기적인 자산 축적을 도모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여러 자산이 함께 하락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분산투자 역시 손실을 막는 방패는 아니지만, 한 번의 충격이 노후 전체를 좌우하지 않도록 돕는다.
이를 연금계좌에 구현하는 방법으로 ‘핵심-위성(Core-Satellite)’ 전략을 생각해볼 만하다. 포트폴리오의 60~70%는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과 채권 비중을 알아서 리밸런싱해 주는 생애주기형 펀드(TDF)나 글로벌 대표지수 같은 ‘핵심 자산’으로 묵직하게 채워둔다. 그리고 남은 30~40%는 반도체나 인공지능(AI)처럼 구조적 성장이 예상되는 메가트렌드 중심의 ‘위성 자산’으로 구성해 초과 성과를 노려보는 방식이다. 단단한 핵심 자산이 하락장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동안, 민첩한 위성 자산이 시장 변화를 파고들며 탄력을 더해준다. 다만 위성을 유행에 따른 잦은 매매의 공간으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제시한 비중 또한 정답이 아니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과 감내할 수 있는 손실의 한도에 따라 나만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401(k)나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같은 연금 선진국을 들여다봐도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글로벌 자산배분과 꾸준한 적립식 투자라는 단순한 진리다. 세계 유수의 연기금과 금융기관들이 왜 이토록 지루해 보이는 원칙을 끊임없이 강조하겠는가. 불안함을 거스르는 단단한 원칙만이 변덕스러운 시장에서 내 노후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방향은 내일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연금 투자 원칙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