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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에서 믿을 수 있는 물로[최종수의 기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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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I 2026.09.14 0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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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품질 꾸준한 개선에도
바로 마시는 것에 거부감 여전
주거지역 단위 인증제 등 도입
안전성 체감 통해 신뢰 높여야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 물맛만으로 수돗물과 생수를 구별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서울시가 시민 1505명을 대상으로 서울 수돗물인 아리수와 시판 생수 두 종류의 이름을 가린 채 맛을 보게 했다. 아리수를 정확히 수돗물로 찾아낸 사람은 40.2%였지만 오히려 생수를 수돗물이라고 고른 비율은 42.5%로 더 높았다. 맛의 선호도도 비슷했다. 눈을 가리고 마시면 비슷한 물인데도 이름을 알고 마시면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수돗물 문제는 물맛보다 인식과 신뢰의 문제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우리나라 먹는물 수질기준은 1963년 30개 항목에서 현재 61개 항목으로 확대되는 등 꾸준히 강화돼 왔지만 국민 신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2024년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또는 끓여 마신다는 응답은 복수응답 기준 37.9%였던 반면 정수기 이용은 53.6%, 먹는샘물 구입은 34.3%였다.

수돗물을 바로 마시는 데 대한 국민의 거리감은 오래됐다. 20여 년 전 환경부 조사에서도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는 응답은 1%대에 그쳤다. 당시보다 수질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에도 정수기와 먹는샘물이 주요 음용 방식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질 개선이 곧바로 음용 습관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세대별 차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수돗물에 대한 만족도는 연령이 낮을수록 대체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음용 방식의 차이는 더 뚜렷하다. 60대 이상에서는 수돗물을 그대로 또는 끓여 마신다는 응답이 56.0%였던 반면 20대 이하에서는 16.1%에 그쳤다. 수질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젊은 세대와 수돗물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이를 단순히 세대 성향의 차이로만 볼 일은 아니다.

2024년 실태조사를 보면 국민이 수돗물을 꺼리는 이유도 드러난다. 수돗물을 마시는 물로 꺼리는 이유로는 ‘노후 수도관의 불순물이 걱정돼서’라는 응답이 34.3%로 가장 많았다.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도 ‘현재 거주 주택의 수질’이 34.9%로 가장 높았다. 결국 국민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정수장에서의 수질만이 아니라 그 물이 배관을 거쳐 내 집 수도꼭지까지 깨끗하게 도착하는지다.

여기서 정책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수질은 꾸준히 좋아졌는데 음용률이 제자리라면 수질 개선만으로 국민의 신뢰까지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전한 물을 만드는 노력은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국민이 수돗물의 안전성을 직접 확인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신뢰를 높이는 정책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수돗물안심확인제’다. 시민이 신청하면 담당자가 가정을 방문해 수도꼭지 수질을 무료로 검사하고 결과를 알려준다. 2024년 실태조사에서 이용자의 78.8%가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제도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13.9%에 불과했다. 효과에 비해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셈이다. 더욱이 신청 가구를 일일이 방문하는 방식만으로는 서비스를 넓히는 데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아파트 단지나 일정 규모의 주거지역 단위로 ‘수질 안심인증’을 도입해 볼 수 있다. 배관과 급수 특성을 고려해 대표 가구의 수도꼭지 수질을 검사하고 기준을 충족하면 일정 기간 인증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공개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정밀검사를 연계한다. 모든 가구를 보증하기보다 해당 지역의 급수 상태를 주민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문제는 재원이다. 2024년 상수도통계에 따르면 전국 평균 수도요금은 톤당 829원인 반면 생산원가는 1114원으로 요금 현실화율은 74.4%다. 그렇다고 곧바로 요금 인상에 기대서는 곤란하다. 누수 저감과 경영 효율화, 국비·지방비 지원을 우선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단계적인 요금 현실화를 검토해야 한다.

좋은 수돗물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과제는 그 품질을 수도꼭지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신뢰로 연결하는 일이다. 수돗물 정책의 목표도 ‘깨끗한 물’에서 ‘믿고 마시는 물’로 나아가야 한다. 수도꼭지를 틀어 망설임 없이 컵을 내미는 일상, 그것이 수돗물 정책이 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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