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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선순위 임차인이 배당을 신청해 보증금을 받고 나가겠다고 하면 낙찰자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선순위 임차인이 배당을 신청하지 않았을 때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낙찰자가 보증금을 모두 인수하고 임차계약을 유지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낙찰자 입장에서는 보증금만큼 사실상 매수금액이 올라가 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 대구 중구 남산동 인터불고토아시스 아파트(생활주택) 전용면적 26.9 ㎡는 9회차나 유찰되고 현재 10번째 매각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연이은 유찰 끝에 이 아파트의 최저매각가격은 감정가(1억 1300만원)의 4%인 456만원까지 떨어졌다.
이전 입찰자들이 고가에 낙찰한 것도 아니다. 이 아파트는 2차례 낙찰됐는데 한번은 지난 5월 권모씨가 1111만원에, 다른 한번은 지난 8월 정모씨가 523만원에 낙찰받았다. 그러나 두 번 모두 대금을 끝내 정해진 기일까지 납입하지 않으면서 경매는 무효가 됐다.
1억원 짜리 아파트가 감정가의 5% 수준까지 떨어진 것은 사실 이 아파트에 숨겨진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세입자 황모씨의 존재다. 황씨는 근저당이 잡히기 전 전세권 설정을 한 대항력 있는 세입자로 9000만원의 전세금을 보장받은 상태다. 즉, 낙찰자가 이 아파트를 500만원에 낙찰받았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 아파트의 가격은 9500만원인 셈이다.
다행히 황씨의 전세계약기간은 지난 9월 23일로 만료됐다. 이에 따라 낙찰자는 황씨에게 9000만원을 돌려주는 것으로 전세계약을 끝낼 수 있게 됐다. 그렇지 않고 만약 황씨의 계약기간이 더 있고 황씨가 이 집에 거주할 것을 주장한다면 낙찰자는 반드시 이 계약기간을 지켜줘야 한다. 만약 이 아파트의 전셋값 시세가 9000만원을 넘어선다면 낙찰자는 더 높은 전세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쨌든 지난 8월 경매에서도 낙찰자가 잔금 납부를 포기함으로써 이 아파트는 오는 18일 다시 한번 새 주인을 찾는 여정을 떠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