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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살빠지면 큰일"…폭염속 젖소 330마리의 여름나기

전재욱 기자I 2021.07.25 10:59:06

<강원 평창 대관령 삼양목장 축사 가보니>
유럽에서 온 젖소는 한국 여름 질색…식사량 줄어 체중감소
아침밥 시간 당겨 식욕유지…그만큼 일러진 직원 출근시간
체온조절용 '미스트 샤워' 뿜어져 나오면…`기분좋아` 댄스 타임

[강원 평창=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강원 평창군 대관령 삼양목장 직원들은 7월부터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한다. 젖소가 아침을 먹는 시간이 오전 8시에서 7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젖소는 더위를 잘 타서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밥을 먹이고자 시간을 당겼다. 이른바 목장 판 `서머타임`(여름에 표준시를 1시간 앞당김)이다.

22일 정오 삼양목장 축사 안의 온도계가 섭씨 26℃대를, 습도 67%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서울의 낮최고 기온은 35.5℃까지 올라 축사보다 10도 가량 높았다.(사진=전재욱 기자)
◇유로파 젖소는 여름이 괴로워

22일 목장에서 만난 김세하 목장장은 “여름에 젖소를 관리하려면 모든 직원이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해마다 이맘때면 목장은 비상근무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목장은 젖소 330마리가 받을 더위를 퇴치하는 데에 모든 더듬이가 맞춰져 돌아간다. 젖소가 더위를 먹으면 결과는 감당하기 어렵다. 입맛이 떨어져서 사료를 덜먹고 살이 빠지게 돼 우유 생산량이 감소한다. 김 목장장은 “잘못해서 젖소 체중이 빠지는 시기는 한 달이지만 다시 살이 찌려면 석 달이 걸린다”고 했다.

젖소의 고향이 유럽이라는 점을 미뤄보면 이해가 갈 만하다. 한국의 대부분 젖소(얼룩 무늬가 특징)는 유럽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홀스타인종(種)이다. 북위(수도 기준)로 보면 네덜란드(52도)가 한국(37도)보다 북극에 훨씬 가깝다. 여기보다 시원한 데에서 나고 자란 젖소가 우리네 더위에 익숙지 않은 것은 자연의 섭리다. 젖소의 더위를 물리치는 일은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야 하기에 고단하다.

22일 정오 삼양목장 축사에서 미스트가 내리고 있다. 목장은 축사 기온을 내리고자 이때부터 2시간 간격으로 오후 4시까지 하루 세 차례 미스트를 뿌린다. (사진=전재욱)
◇ 시원한 미스트 틀어주면 `신나`

젖소가 목장의 노력에 보답할 때 서로가 받아온 고단함은 씻겨나갔다. 정오가 돼 하늘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자 젖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얘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미스트 샤워`였다. 미스트는 종일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젖소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삼양목장은 축사에 하루 세 차례 미스트를 뿌린다. 축사 천장에 호스를 달아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뿌린다. 기분전환용이겠거니 싶지만 실제로 축사 실내 온도가 금세 섭씨 1℃가 내려갔다.

피부와 바닥이 젖지 않도록 적당히 뿌리는 게 포인트다. 깔짚이 질어지면 젖소의 유방염 발병 확률이 커진다. 되레 더위에 쥐약 같은 습도를 올릴 수도 있다. 김 목장장은 “젖은 몸으로 젖은 담요에 누웠다고 생각하면 찝찝하지 않느냐”며 “깔짚과 털이 젖으면 젖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2일 만난 김세하 삼양목장 목장장이 손으로 깔짚을 비벼 털어낸 후에 기자에게 손바닥을 보여주고 있다. 김 목장장은 “깔짚이 잘 부숙되도록 관리하는 탓에 습도가 없어 손바닥에 얼룩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사진=전재욱 기자)
그러면서 축사 바닥의 깔짚을 집어들어 비비더니 탈탈 털어냈다. 기자에게 보여준 그의 손바닥에는 얼룩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축축한 젖소 분뇨에다가 미스트까지 섞여 있으니 손을 더럽힐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미스트에 담긴 친환경 물질 BM 활성수가 깔짚이 부숙(腐熟·썩어서 익음)하는 걸 촉진한 덕이다.

김 목장장은 “이렇게 더위를 예방할뿐더러 위생적으로도 뛰어난 사육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했다.

◇ 대관령도 덥기는 마찬가지

낙농가에 따르면 기온이 30도를 넘는 여름철이면 일반 축사는 크게 세 가지 처방이 내린다. △축사에 에어컨을 틀어 기온과 습도를 내리고 △천장에 단열 페인트를 발라 복사열을 차단하고 △글리세린을 사료로 급여한다. 글리세린은 단맛이 강한 젖소용 사탕으로 식욕을 유발한다.

22일 삼양목장에서 만난 젖소가 사료를 먹다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젖소는 건초와 사룔를 코에 묻힌 채로 다시 물을 마신다. 이로써 물통에 이물이 섞여 쉬 더러워진다. 김세하 목장장은 “이런 이유에서 여름철에는 물이 변할 수 있어서 각별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사진=전재욱 기자)
삼양목장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사실 대관령에서 사는 젖소는 팔자가 좋은 편이다. 목장이 해발 950m께 위치해 상대적으로 선선하다. 이날 서울 도심 기온이 35.5도(15:00시 기준)까지 올랐지만 여기(정오)는 26도에 불과했다. 해가 지고 저녁이면 21℃까지 내려간다. 젖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최소한의 기온이다.

복사열 차단 페인트를 바르는 수고도 없다. 덜 덥기도 한데 축사 천장이 높은 덕이다. 유기농으로 젖소를 기르려고 넓게 지은 축사를 지탱하려면 처음부터 층고를 높여야 했다. 유기농 기법 탓에 젖소용 사탕은 주고 싶어도 못 준다.

김 목장장은 “우리 축사 천장은 일반 축사보다 3분의 1 정도 높다”며 “천장이 높아 복사열이 내부로 덜 전달되고 공간이 넉넉해 환기가 잘된다”고 말했다.

22일 삼양목장 축사에서 만난 젖소들이 물통과 출입구 근처에 모여 선풍기 바람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세하 목장장은 “물을 마시기 편하고 공기가 잘 통해 시원한 곳이라서 여름이면 젖소들이 몰리는 장소”라며 “자리를 맡기 어려운 노른자 땅”이라고 말했다.(사진=전재욱 기자)
호사를 누리는 대관령 젖소지만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7~8월은 방목을 중단하기 때문에 우생(牛生) 최고의 낙인 `뛰노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김 목장장은 “이 시기는 풀어주더라도 축사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며 “뛰는 즐거움을 포기하겠다고 몸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장 직원의 노력과 축사 천혜의 환경을 누리는 삼양목장 젖소도 올여름은 더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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