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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총재는 18일 중의원 결산 행정 감시위원회에 참석해 “큰 폭의 엔저와 급속한 엔저는 (경제에 대해) 마이너스(효과)가 커질 것”이라며 “가계와 중소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엔화 가치가 약 한 달만에 10엔 정도 하락해 환율이 매우 급속도로 변동했다”며 “과도하고 급격한 변동은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기 때문에 경제에 마이너스 작용을 주는 것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수입 가격이 오르면 가계 (재정) 부담이 커지고, 수입 가격 상승을 전가할 수 없는 중소기업은 수익이 줄어든다”며 “엔저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경우엔 마이너스가 커진다. 기업의 업종과 규모, 여기에 경제 주체에 따라 (엔저) 영향이 불균형한 점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다만 “엔저가 일본 경제 전체에 대해서는 플러스라는 평가를 바꾼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 경제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대외 가격경쟁력 측면 등에선 여전히 좋다는 견해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스즈키 준이치 일본 재무상도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기업이 비용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고 임금 인상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나쁜 엔저’”라고 말했다. 자칫 시장개입으로 읽힐 수 있는 만큼 통화당국 최고 책임자가 환율에 대해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처럼 엔저에 대한 인식이 다소 바뀐 것은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효과보다 원재료값 급등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경제가 코로나19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이 급격하게 뛰었다.
또한 지난 10년간 일본 기업들은 엔화 강세를 피해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했는데, 이 때문에 엔화 약세가 수출에 기여하는 효과도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처지다. 실질적인 가계소득 감소와 경제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서면 지난 10년 간의 금융완화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아베노믹스가 부메랑이 돼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베노믹스는 완화적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규제완화라는 일명 ‘세 개의 화살’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돈을 풀어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만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다쓰자와 겐이치 교토다치바나대 객원교수는 최근 경제 주간지 프레지던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은 아베노믹스의 청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1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오전 한때 1달러당 126.78엔까지 떨어졌다. 2002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엔화 가치가 1달러당 130달러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엔화 가치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 긴축 기조 속에서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다른 국가들 간 장기금리 격차가 확대하면서 투자자금을 일본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시키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엔화를 팔려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통화가치도 떨어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