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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23살의 젊은 여성 게릴라의 눈빛은 차갑고 매서웠다. 군사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 극렬 좌파 조직에 가담했던 여성 게릴라는 3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전기 고문도 당했다.
혁명을 꿈꾸던 젊은 여성은 감옥에서 출소한 뒤 대학에 들어갔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통화론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정치에 입문해 에너지 장관과 정무수석을 거쳤고, 결국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이야기다.
게릴라에서 대통령이 된 호세프는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31일(현지시간) 브라질 상원은 전체회의를 열고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61표, 반대 20표였다.
탄핵안 통과에는 전체 상원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2인 54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찬성표가 탄핵에 필요한 3분의 2를 훌쩍 넘었다. 호세프는 30일 내에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을 떠나야 한다.
호세프 대통령의 임기는 2018년 말까지다. 남은 임기는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 맡는다. 내달 4일부터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한다.
호세프의 발목을 잡은 건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이다. 국영에너지 회사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불거지며 지지율이 급락했다.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의 자금을 사용한 게 탄핵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호세프의 반대파는 호세프가 2014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경제 실적을 과장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고 몰아붙였다. 브라질 법원이 재정회계법을 위반이라는 판결까지 내리면서 탄핵정국에 기름을 부었다.
탄핵을 주도한 건 테메르 부통령이다. 그는 브라질 최대 정당인 민주운동당(PMDB)의 수장이다. 테메르 부통령은 호세프가 이끄는 노동자당(PT)과의 연립정부에서 탈퇴하고 호세프의 탄핵을 밀어붙였다.
테메르 부통령은 호세프가 탄핵되고 자신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을 때를 대비해 미리 연설 연습을 했을 정도로 권력욕을 보였다. 호세프는 테메르를 향해 ‘배신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게릴라 출신인 호세프는 순순히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상원의 탄핵안 투표 결과 직후 호세프는 “그들은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면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호세프측은 대법원에 위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정치적 동지이자 브라질 좌파의 아이콘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을 노동자당 대표로 추대해 2018년 대선에서 재집권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브라질의 정치적 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