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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최근 영세 제조업체 생존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규제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다. 지난 2012년 구미 불산사고를 계기로 제정돼 2015년부터 시행 중인 화관법은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업체가 취급시설 구축 등 조건을 충족해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관법을 어기면 대표이사는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맞게 된다.
문제는 화관법 적용을 받는 중소기업들이 법 기준을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화관법에 명시된 기준을 충족하려면 취급시설과 장외영향평가, 취급자 교육 등 기업규모에 따라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내진설계, 경보장치 등 시설 기준만 336개 항목에 달한다. 정부는 법 시행 이후 유예기간 5년을 부여했지만, 여전히 영세 업체들은 화관법 충족에 애를 먹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지난 4월부터 취급시설 정기검사를 오는 9월 말로 유예했지만, 10월부터 다시 정기검사가 시작되면 많은 기업인들이 ‘범법자’로 몰릴 위험이 있다. 전국 도금업체들이 모여 있는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조합 325개 회원사 중 화관법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가 96%에 달한다”며 “오는 10월부터 다시 단속이 재개된다면 대부분 표면처리 업체들은 처벌을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벤처·스타트업 역시 ‘거미줄 규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2018년 정보기술(IT) 전문 로펌 테크앤로 조사 결과,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13곳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미국의 차량공유기업 ‘우버’와 ‘그랩’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저촉된다. 원격의료 기업 중국의 ‘위닥터’는 의료법에 막힌다.
잘나가던 신생 기업이 규제에 막혀 좌초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개정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으로 운영을 중단한 ‘타다’가 대표적이다. 타다는 그동안 현행법에 ‘11~15인승 승합차 렌트 시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운영해왔는데, 정부가 법을 개정하며 이를 금지한 것이다. 타다는 결국 법 개정안 통과 한 달만인 지난 4월 영업을 중단했다.
최수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벤처기업은 규제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에 규제 입안 시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며 “21대 국회는 ‘규제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 정부와 함께 신속하게 규제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