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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세가 매섭다. 2017년 기준 모바일 게임 시장규모는 6조 2102억원으로 전체 게임 시장의 47.3%를 차지했다. 2011년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가 전체 시장의 4.8% 수준인 4236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남짓한 시간 만에 시장이 1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다만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이상 붉은 꽃도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완성도가 낮은 채 과금 서비스를 통해서 게이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양산형 게임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 국내 게임 시장의 현 주소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이 일거에 무너졌던 일명 ‘아타리 쇼크’ 사건을 보면 질 낮은 상품의 무분별한 공급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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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게임 시장 호황을 불러일으킨 ‘아타리’
1972년 6월 유타 대학 출신의 놀런 부슈널은 MIT 학생들이 만든 ‘스페이스워!’에 관심을 갖고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 자본금 500달러로 ‘아타리’를 설립한 그는 같은 해 11월 탁구를 변형한 게임 ‘퐁’을 내놓았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화면 양 끝의 바를 움직여 공을 받아치는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퐁이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며 아타리는 게임 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르게 된다.
아타리의 성공을 눈여겨 본 미국의 미디어 재벌 그룹 ‘워너 커뮤니케이션즈(現 워너 미디어)’는 1976년 회사를 2800만 달러에 인수한다. 아타리는 워너에 인수된 이듬해 게임기 ‘아타리2600’을 출시했지만 판매 부진에 시달린다. 이에 워너는 부슈널과 결별하고 의류업계에서 명성을 떨치던 전문 경영인 레이몬드 에드워드 카사르를 아타리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다.
워너의 전략은 적중했다. 카사르는 게임 업계에 밝지 못했지만 다년 간 쌓은 경영 전략과 마케팅을 바탕으로 아타리를 이끌었다. 그 결과 1979년 아타리2600의 판매량은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후 아타리는 불후의 명작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아타리용으로 이식하면서 1980년 2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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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가 무섭게 성장하며 사실상 독점 체제를 구축하자 아타리용 게임을 개발해 내놓는 게임 업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타리의 허가를 받지 않고 아타리를 분해한 뒤 아타리용 게임을 발매하는 게임 개발사들과 아티리는 소송전을 치뤘고 결국 아타리는 특허료를 챙기며 해당 업체들이 아타리 게임기용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이런 게임 개발사들을 ‘서드 파티’라고 부른다.
문제는 아타리가 서드파티로부터 특허료만 받을 뿐 그들을 통제할 능력이 전혀 없었단 점이다. 아타리용 게임만 내놓으면 날개 돋힌 듯 팔렸기 때문에 서드파티들은 게임 완성도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아타리 역시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른 게임을 그대로 베껴 내놓는 일은 허다했고 저급한 포르노 게임까지 등장하기 이르렀다. 여기에 아타리의 성공을 목도한 무역회사, 완구회사 등이 게임 개발기 생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며 북미 게임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게임 시장의 ‘버블’이 터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타리는 1981년 이듬해 풀릴 남코의 게임 ‘팩맨’의 아타리용 물량을 선주문 받았다. 당연히 전량 소진될 것이라 여겼던 게임 유통사 등은 대량 주문을 넣었고 선주문 물량은 1200만 개까지 쌓였다. 그러나 팩맨은 700만 개가 팔리는 흥행에도 불구하고 기형적으로 몰려든 선물량 때문에 500만 개의 재고가 남는 사태가 발생했다.
워너는 결국 1982년 수익이 컨센서스를 크게 하화할 것이란 발표와 함께 아타리 가정용 게임기 부문 사장을 해임하기에 이른다. 이 소식은 뉴욕 증권 시장에 퍼져 모회사인 워너 커뮤니케이션즈는 물론 마텔, 콜레코 같은 경쟁사, 게임 유통업체 토이저러스 등 게임 관련주(株)들의 주가가 급속히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게임 1위 업체 아타리의 부진은 곧 아타리와 연계된 서드파티들에 영향을 미쳤다. 시장 상황이 악화 일로로 치닫자 결국 게임 회사들은 덤핑 가격에 재고 처리에 들어갔고 제 값을 주고 게임을 사는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결국 수익을 맞추지 못한 게임 업체들의 줄도산이 이어지며 미국 게임 시장은 붕괴하기에 이른다. 1982년에 30억 달러까지 갔던 게임 시장 규모는 1985년 1억 달러 수준까지 추락했다.
◇제 2의 아타리 쇼크는 기우일까
아타리 쇼크는 질 낮은 상품이 범람하면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교훈 외에도 시장의 낙관 일변도 전망이 한 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최근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점도 이 때문이다. 완성은 뒷전인 채 과금만을 유도하려는 불필요한 콘텐츠, 천편일률적인 게임 진행 방식를 탑재한 양산형 모바일 게임이 하루에도 수 십 개씩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조기퇴출되는 모바일 게임 역시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유큐소프트의 ‘원더 히어로’는 2017년 8월 출시돼 이듬해 3월 31일 서비스를 공식 종료했다. 세시소프트의 ‘진격의 여친’ 역시 1년을 버티지 못한 채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모바일게임 뿐만 아니라 PC 온라인 게임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제 2의 아타리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게임 시장을 아타리 쇼크 때와 비교하긴 어렵다. 당시 북미 게임 시장은 아타리가 플랫폼을 독점하는 구조였고 당시 게이머들도 게임을 구매해 체험하기 전까진 해당 게임의 완성도를 판별하기 어려워 졸작 게임이 시장에서 배제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현재 게임 시장은 플랫폼 기업이 다변화 돼있는데다 게임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아타리 쇼크처럼 저급 게임의 범람으로 게임 업계가 기우는 사태가 발생하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폭풍 전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임 업체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게임 산업의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미국의 선례를 보듯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며 “중국 게임사들의 제작 능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양산형 게임 제작에 치중하기보다는 배틀 그라운드 등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대작을 개발할 업체를 꾸준히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