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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라지니…‘잠수’ 배우들이 뜬다

김미경 기자I 2017.09.07 06:42:59

문성근·김명곤…속속 TV 복귀
활발히 활동했던 유인촌은 ‘잠잠’
윤이상·세월호 책 ‘정부 추천도서’
650일 만에 무대 오른 극단도
“정권 바뀌었지만 새 검열 경계해야”

배우이자 전 문체부 장관인 유인촌(왼쪽부터)과 8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배우 문성근, 노무현 정부 시절 제 8대 문광부 장관을 지낸 배우 김명곤(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배우 문성근이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서 금기로 여겨졌던 세월호 참사 관련 서적은 정부 추천도서에 이름을 올렸다. 블랙리스트(정부의 재원 배제 명단) 피해를 입은 한 극단은 2년여만에 다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불과 1년도 안돼 달라진 분위기다. 문화계는 이를 두고 “문화예술 전반에 작동했던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라며 “이제야 비정상의 정상화가 제 궤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못보던 배우들 속속 TV 모습…“정권 교체 실감”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활동을 멈췄거나 지원에서 배재됐던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이 속속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친노무현 인사로 알려진 배우 문성근은 블랙리스트 대표 인사로 언급돼 왔다. 그는 오랜만에 공영방송 SBS TV 드라마 ‘조작’에서 구태원 역을 맡았다. 2009년 드라마 ‘자명고’ 출연 이후 8년만의 복귀이다.

그의 아버지는 고 문익환(1918~1994) 목사다. 문 목사는 지난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80년대 이후엔 통일운동에 매진하는 등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문성근은 이런 부친의 영향을 받아 배우로 데뷔한 이후로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SBS 드라마 ‘조작’ 출연 모습
그러다 2001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해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에도 노사모 활동을 비롯한 정치활동을 계속했지만 안방극장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문성근은 ‘조작’ 제작 발표회에서 자신이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 것과 관련 “정치 세력의 수준이 너무 저급해서 나타난 불행한 일이었다”며 출연 제재를 받은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밥줄을 끊는 건 저렴한 행태다. 일종의 폭력”이라며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판했다. 이어 “시청자와 국민은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배우의 연기를 즐길 권리가 있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져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배우 김명곤은 요즘 자주 TV에 얼굴을 비춘다. 약 2년 전 16년만에 연극 배우 복귀 후 주로 무대에 올랐다면 요즘은 tvN 드라마 ‘명불허전’에서 조연급으로 활약중이다. 배우이자 연극연출가인 김명곤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2006년 3월~2007년 5월) 제 8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대나 TV에서 사라진 배우들이 얼굴을 내비치는 반면 김명곤 전 장관과 나란히 무대로 돌아온 배우 유인촌은 최근 2년간 활발한 활동을 했다가 요즘은 온데 간데 소식이 없다. 스스로 움직임을 자제하는 것 같다”며 “정권 교체를 실감한다”고 했다. 배우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에 발탁됐다. 2008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해 2011년 1월까지 약 3년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다. 2015년 김명곤 전 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대형 무대로 복귀해 연극 ‘페리클레스’ ‘햄릿’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수난 겪은 일부 극단, 정부 지원 받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주축이 돼 연극활동을 하는 극단 다빈나오는 무려 650일만에 무대에 오른다.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효천아트센터에서 소리극 ‘옥이’를 공연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세월호 관련 글을 몇차례 올렸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던 탓이다. 단원들은 그동안 공연은커녕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김지원 다빈나오 대표는 “헌번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내린지 불과 7시간여만에 문체부 측으로부터 다시 지원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대 지원배제’ 단체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연희단거리패·극단 유랑선·극단 하땅세 등은 15일부터 한 달 간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블랙리스트를 집행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로 하는 행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올초 발표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에서 지원 배제된 총 공연예술 107개 단체 중 3곳이다. 하땅세는 총 14회나 지원에서 배제되며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윤이상에 세월호까지…출판계도 확 달라져

출판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분다. 지난해 블랙리스트 논란에 휘말렸던 세종도서 선정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이 나온다. 1968년부터 시행중인 세종도서는 정부가 전국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할 우수 도서를 선정해 책 1종당 1000만원 이내를 구매비로 지원하는 사업(1년 예산 140억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17 상반기 세종도서 선정 결과(790종)에 따르면 지난 정부에서는 명단에 오르지 못했을 책들이 여럿 포함됐다. 윤이상의 음악과 삶을 다룬 ‘윤이상 평전’이 교양부문에, 세월호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의 이야기를 그린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와 진보 성향이 강한 공지영 작가의 수필집 ‘시인의 밥상’이 문학부문에 선정됐다. 세월호 참사 관련 서적은 2015년부터 쏟아졌으나 단 한 권도 세종도서로 선정된 적이 없었다.

출판계 한 관계자는 “음악계 대표적인 ‘블랙리스트’로 언급되는 윤이상의 음악과 삶을 다룬 ‘윤이상 평전’도 이름을 올렸다”며 “세종도서 선정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10~11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장을 지원받지 못했던 전태일청소년문학상도 올해부터 다시 장관상을 수여한다. 전 정권에서 문체부는 “전태일은 문학인이 아니다”며 장관상 지원을 거부했다.

윤시중 극단 하땅세 대표는 “작품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면서 “블랙리스트도 관점에 따른 분류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바뀌었다지만 새로운 블랙리스트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 블랙리스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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