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선도 기업 ‘23앤드미’의 몰락...국내 유전체 분석 업계 영향은

김진호 기자I 2024.02.21 13:59:23
[이데일리 김진호 기자] 유전체 빅데이터 사업의 선두주자로 알려졌던 미국 ‘23앤드미 홀딩스’(23앤드미)의 주가가 고점 대비 95% 이상 폭락했다. 주력 사업의 수익성 악화, 정보 유출 사태, 신약 개발로 인한 투자 손실이 겹친 것이다. 23앤드미에 대한 상장 폐지 경고도 나왔다.

23앤드미 사태가 유전체 분석서비스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클리노믹스(352770)부터 마크로젠(038290), 엔젠바이오(354200), 지니너스(389030) 등 10여 개 기업이 유전체 분석 및 진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전체 기술 고도화와 이를 활용한 미래 정밀 의료 시장의 성장성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조상의 특징을 찾는 개인 유전체 검사(PGS) 사업을 주력으로 성장한 23앤드미가 실적 부진 등의 위기로 상장 폐지 위기에 놓였다.(제공=23앤드미)
◇생존 위헙 받는 ‘23앤드미’, 이유는?

1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23앤드미의 주력 사업인 유전자 혈통 검사는 일회성 사업으로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회사가 심각한 재정적 위험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지난해 불거진 유전 정보 유출 사태로 DNA 사업에 대한 신뢰도도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런 상황은 실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23앤드미가 지난 8일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매출은 4470만 달러로 전년 동기(6690만 달러) 대비 33% 감소했다. ‘개인 게놈 서비스(PGS) 판매 감소’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진행해 온 협력 연구 기간 종료로 수익이 감소한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또 23앤드미는 지난해 총매출은 2억1500만~2000만 달러 사이, 순손실은 5억2000만~2500만 달러 사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회사의 유전체 서비스의 수익성은 감소하고 임상 분야 개발비용은 크게 늘었다는 설명도 내놓았다.

23앤드미는 유전체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과 그 조상의 유전적 특징을 찾아주는 PGS 사업을 주력으로 성장했다. 회사는 전립선암 진단 솔루션 등 11종의 유전체 기반 질병 진단 및 예측 서비스를 미국에서 출시했다. 면역치료제 후보물질 ‘23ME-00610’을 발굴해 임상 1/2a상을 직접 시도하는 중이다. 해당 임상의 결과가 올해 일부 도출될 수 있지만, 개발 완수까지는 5년 내외의 기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유전체 분석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의 특징을 분석하는 PGS는 일회성으로 그친다”며 “하지만 여기서 확보한 유전 정보로 최초로 전립선암 솔루션을 출시하는 등 항암 진단 분야를 개척했고, 관련 서비스의 사용율이 성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불거진 유전 정보 유출 사태로 신뢰를 잃고, 신약 개발로 손실 규모가 너무 커져 사업 지속성이 위협받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은 주가에도 온전히 반영되고 있다. 23앤드미가 나스닥에 상장한 이듬해인 2021년 2월 회사의 주가는 16달러로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경 23앤드미 주가는 1달러 미만으로 내려앉았다. 비슷한 시기 “회사가 보유한 유전 정보 데이터를 유출했다”고 공언한 해커가 등장했다. 이에 미국 나스닥이 23앤드미 측에 상장 폐지 경고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 예측 분야 유전체 검사 시장 성장성 大”

23앤드미의 사례가 국내외 유전체 분석 및 진단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이 초미의 관심사다. 업계에서는 유전체 진단과 분석 시장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PGS처럼 개인 유전체 검사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질병 예측을 위한 유전체 검사 시장이다. 나머지는 신약 개발 또는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기업이나 기관이 수행하는 유전체 분석 및 관련 장비 시장이다.

글로벌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전체 유전체 분석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159억 달러(한화 약 21조원)이다. 이중 약 10~15%(2조~3조원)만이 개인 유전체 검사 및 질병 예측 유전체 검사 관련 시장에 해당한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체 서비스 시장 비중이 크지 않은 것이다. 또 질병 예측 유전체 검사 시장 규모는 개인 유전체 검사 시장 규모 보다 2배 이상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유전체 검사 서비스 시장에서 질병 예측 위한 유전체 분석 시장이 개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보다 2배 가량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제공=메디젠휴먼케어)
개인 유전체 검사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검사 항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서비스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소비자 직접의뢰(DTC) 검사라는 이름으로 120여 개 항목에 대해 인증을 받은 기업만이 관련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DTC 사업을 진행하는 업계 한 대표는 “개인 유전체 검사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소비자가) 호기심에 한 번 받으면 끝이다”며 “기술이 좀 더 나아지거나 검사항목이 늘어나도 이런 검사를 다시 받을 확률이 낮은 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질병 예측 분야는 성질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13년 유명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체 검사에서 BRCA 돌연변이를 확인한 다음 유방암 예방을 위한 수술을 받은 사건을 예로 들었다. BRCA 변이와 유방암 발병과의 연관성이 널리 인정되고 있고, 이를 고려해 한 개인이 수술적 결단을 내린 일이었다.

앞선 대표는 “가족력이 있는 질병에 대한 예측과 진단이 가능한 유전체 검사라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시행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전체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반영한 예측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졸리와 같은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고 강조했다. 유전체 기술이 발달하면 미래 의료의 핵심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유전체 분석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혈액이나 타액 기반 유전체 검사가 질병을 진단하거나 예측하기 위한 초기 자료로 널리 활용될 시기가 올 것이다. 2030년대 초중반에는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며 “이를 앞당길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소비자 인식 개선에 관련 업계가 공동으로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