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휠 디자인이나 각종 램프류, 범퍼 등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외관 디테일을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쌍용 뉴 체어맨이나 현대 쏘나타 트랜스폼처럼 실내 디자인까지 크게 변경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최근 현대 아반떼, 제네시스 G90은 풀 모델 체인지에 가까운 페이스리프트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페이스리프트는 과연 소비자와 제품 판매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간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제품 이미지를 개선하고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렸던 7개 차종을 살펴봤다.
1. 현대 뉴EF쏘나타
1998년 현대차는 외환위기 속에 4세대 EF쏘나타를 야심차게 출시했다. 그러나 곧이어 삼성그룹의 자동차시장 진출과 함께 SM5가 혜성처럼 등장했고 뛰어난 상품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면서 중형차 1위 자리를 빼앗았다. IMF 위기로 소비가 위축되는 경제상황도 악재였다.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00년 대우자동차 매그너스가 넉넉한 차체 크기와 뛰어난 스타일을 앞세워 쏘나타를 위협했다. 형제차인 기아 옵티마도 가세해 EF쏘나타는 줄곧 고전을 면치 못한다.
위기감을 느낀 현대차는 2001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외관 디자인을 크게 수정한 뉴EF쏘나타를 출시한다. IMF의 여파가 잠잠해지기 시작하고 내수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중형차 판매량이 점차 상승했다. 뉴EF쏘나타의 개선된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주는데 성공해 월 평균 1만대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중형차 1위를 재탈환했다. 안정된 내구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택시로도 SM5 못지 않게 높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헤드램프 디자인이 벤츠 C클래스(W203)와 상당히 유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논란 속에 대박을 낸 셈이다.
2. 기아 뉴모닝
유럽형 경승용차를 표방하며 2004년 출시된 기아 모닝은 풍운아였다. 당시 경차기준은 배기량 800cc 미만으로, 1.0L 엔진을 탑재한 모닝은 경차가 아니었다. 2008년 1월, 특별소비세가 개별소비세로 이름을 바꾸는 동시에 경차기준 또한 배기량이 상향 개편되면서 경차에 포함됐다. 때 맞춰 외관을 대폭 수정한 뉴모닝을 출시해 800cc 엔진을 탑재한 GM대우 마티즈를 공간과 출력 면에서 앞서며 경차시장의 판도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경차기준 개편과 뉴모닝 출시가 겹치면서 정부가 ‘현대기아차에 과도하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
아울러 고유가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불황이 겹치면서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작의 감흥 없는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귀여워진 성형 수술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높은 판매고로 이어지면서 2015년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에 주춤하기 전까지 경차시장 1위를 지켰다.
3. 기아 로체 이노베이션
2005년 말 옵티마의 후속으로 출시된 기아의 중형세단 로체는 경쟁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핸들링으로 택시시장에서는 환영을 받았다. 대신 밋밋한 외관 디자인으로 일반 자가용 호응은 얻지 못해 판매량은 저조했다. 택시가 급증하자 오히려 제품 이미지가 하락했다. 여기에 1.8L 엔진과 NF쏘나타보다 살짝 작은 차체 크기 덕에 ‘아반떼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루머까지 퍼지면서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쳤다.
2005년 기아차에 피터 슈라이어가 부임한 이후 2008년 그의 손길이 닿은 로체 이노베이션이 출시된다. 현재까지 기아차 패밀리룩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호랑이 코’ 그릴이 처음으로 적용된 기념비적 모델이다. 직선이 강조된 외관이 경쾌한 주행성능을 품은 로체와 잘 어울렸다. ‘스타일이 힘이다’라는 카피를 내걸었고, 카피대로 달라진 디자인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자가용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후에 한차례 마이너 체인지를 통해 블랙 베젤 헤드램프와 2.0L 가솔린 모델에도 듀얼머플러를 장착하는 등 외관을 세련되게 다듬어 2010년, 후속인 K5가 출시되기 전까지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다.
4. 기아 뉴 오피러스
기아 오피러스는 오너드리븐과 소퍼드리븐을 둘 다 만족시키는 고급 대형세단을 표방하며 2003년 출시됐다. 원래 현대 다이너스티 후속으로 개발되던 차를 대형차 라인업이 부족한 기아차에 제공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현대차 라인업과 유사한 디자인 포인트를 갖고 있는 게 특징이다.
벤츠 E클래스 또는 재규어를 연상케 하는 듀얼 헤드램프, 링컨 타운카를 닮은 C필러 등 상당히 보수적인 디자인을 선보였고 각종 차를 짬뽕한 디자인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전용 정비라인과 전용 엠블럼까지 도입하는 등 프리미엄 마케팅에 신경을 썼지만 조화롭지 않은 전면부와 옹졸해보이는 뒷모습 등이 불거지면서 대형차 판매량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06년 5월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내외관을 변경한 뉴 오피러스가 출시됐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수정하고 범퍼 디자인과 테일램프 디자인을 크게 바꿔 전작보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선보였다. 전작의 보수적인 요소는 유지한 채 소소한 디테일 변화로 차가 더 커보이는 효과를 냈다. 새로운 파워트레인과 편의장비를 탑재해 상품성도 크게 개선했다. 해외에서는 혹평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중장년층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크게 성공, 한 때 기아차에서 나온 대형차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5. 쌍용 뉴 카이런
2005년 쌍용이 현대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의 대항마로 출시한 중형 SUV 카이런은 쌍용의 가세를 기울인 ‘못난이 3총사’ 중 둘째다. 벤츠 S클래스(W221)를 빼다 박은 헤드램프와 독특하기 그지없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후면 디자인이 압권이었다. 쌍용은 ‘방패’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청바지 뒷주머니를 연상시킨 테일램프 디자인이 특히 문제였다. 아랫급인 액티언과 큰 차이 없는 실내 디자인 또한 판매에 악영향을 미쳤다. 결국 뒤이어 출시된 싼타페CM에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판매량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2007년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카이런을 출시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를 수정한 전면부는 더욱 S클래스를 닮아 세련된 인상을 줬고, 논란의 중심이었던 테일램프는 무쏘를 떠올리게 만드는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개선된 디자인이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데 성공해 판매량 상승으로 이어졌다. 프레임 보디 형식의 차체가 동급에 비해 험로주행에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퍼져 오프로드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6. 쌍용 코란도 투리스모
전작인 쌍용 로디우스가 악명 높은 디자인으로 해외 미디어에서 '가장 못생긴 차' 베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로디우스는 체어맨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돼 고급스러운 승차감 확보했고 차별 포인트인 파트타임 4륜구동 미니밴이라는 강점을 가졌다. 문제는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난해한 디자인이었다.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윽고 2013년,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외관을 신차수준으로 뜯어고치고 차명까지 ‘코란도 투리스모’로 과감하게 변경했다. 서스펜션과 서브 프레임 등 일부 부품을 체어맨W의 것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등 질적으로도 크게 개선해 못생긴 로디우스를 소비자의 기억에서 지우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단 혹평 받았던 실내 디자인은 변화가 크지 않았다. 원판 불변의 법칙에 따라 외관이 여전히 못생겼다는 것도 흠이었다.
그럼에도 소비자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는데 성공해 출시 초기 판매량이 10배 가까이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디자인 변화 없이 파워트레인만 변경했던 경쟁차 기아 카니발에 질린 소비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아울러 아웃도어 열풍이 확산되면서 국내 유일 4륜구동 미니밴이라는 장점이 다시 한 번 주목 받은 것도 판매량에 호재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14년 6월 기아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3세대 카니발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치면서 코란도 투리스모 판매량은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7. 쌍용 코란도 스포츠
‘SUT(스포츠 유틸리티 트럭)’를 표방하며 등장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무쏘 스포츠에 이어 2006년 출시된 액티언 스포츠는 준중형 SUV 액티언을 베이스로 만든 소형 픽업트럭이다. 4륜구동까지 결합돼 SUV와 다름없는 쓰임새가 돋보였고 화물차로 분류되어 연 2만8500원의 저렴한 자동차세 또한 큰 강점이었다. 아웃도어 열풍과 맞물려 패밀리카로도 많이 쓰였다. 오히려 액티언SUV보다 판매량이 높았을 정도다. 국내 유일의 픽업트럭’이라는 압도적인 세일즈 포인트 덕에 괜찮은 판매량은 유지했지만 액티언으로부터 이식 받은 괴상한 디자인은 여전히 걸림돌이었다.
6년 뒤인 2012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외관과 차명까지 모두 바꾼 코란도 스포츠로 거듭났다. 180도 달라진 전면부로 완전 신차 느낌을 주는데 성공해 판매량이 크게 상승했다. 픽업트럭으로 쓰기엔 연약한 이미지였던 기존 액티언 스포츠의 전면부를 상남자 느낌이 물씬 나는 직선 위주의 디자인으로 변경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식지 않는 아웃도어 열풍의 수혜를 등에 업었고 액티언 스포츠에서 지적 받았던 뒷좌석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는 등 승차 환경을 개선해 레저용 차량으로도 각광받았다. 후속격인 렉스턴 스포츠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직전까지 높은 판매량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