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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자도 못 건드린 ‘연임금지’ 무력화
오는 4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에서 대선이 치러진다. 기적이 없는 한 부켈레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엘살바도르 호세시메온카냐스 중앙아메리카대학 여론조사에서 그는 81,9% 지지율로 2위(4.2%)인 파라분도마르티국민해방전선(FMLN)의 마누엘 플로레스 후보를 20배 가까운 차이로 앞섰다. 의회에서도 60석 중 57석을 싹쓸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부켈레는 엘살바도르 역사상 80년 만에 나오는 재선 대통령이 된다. 엘살바도르 헌법은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서슬 퍼렇던 군부 정권에서도 이 규정은 지켜졌다. 그럼에도 부켈레가 재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대선 6개월 전에 사임하면 연임 금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2021년 헌법재판소 결정 ‘덕’이다. 부켈레가 속한 ‘새로운 생각’당은 그해 총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정권에 비협조적인 헌법재판관들을 탄핵했다. 그렇게 새로 임명된 헌법재판관들이 부켈레에게 재선 가도를 열어줬다.
부켈레는 어떤 사람이기에 엘살바도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것일까. 그의 지지자인 알렉스 치네로스는 “그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이 했다”면서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지만 그는 적어도 무언가를 바꿨다”고 ABC 방송에 말했다.
1981년생인 부켈레는 팔레스타인 이민 3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엘살바도르에 최초의 맥도날드를 들여오고 섬유·홍보회사를 운영한 재력가였다. 부켈레는 2012년 32살 나이에 FMLN 소속으로 수도 수도 산살바도르 인근의 누에보 쿠스카틀란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3년 후엔 산살바도르 시장이 된다. 그는 강경한 치안 정책과 반부패 정책을 앞세워 인기를 끌었다. “아무도 훔치지 않는다면 돈은 충분히 돌 수 있다”는 게 그의 슬로건이었다.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던 그는 2017년 FMLN에서 출당 당하자 새로운 생각을 창당한다. 부패하고 무능한 양당 정치에 지친 엘살바도르 국민은 젊은 부켈레에 주목했다. 2019년 대선에서 부켈레는 39살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MZ세대(1981~2010년생) 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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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경 ‘범죄와의 전쟁’…성인 100명 중 2명 수감
지금의 부켈레의 정치적 위상을 만든 건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이다. 1980년대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엘살바도르 난민 중 적잖은 이들이 범죄에 물들었는데 1990년대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범죄자들을 엘살바도르로 되돌려보내면서 엘살바도르는 폭력에 시달리게 됐다. MS-13과 18번가(Barrio-18)이라고 불리는 양대 조직의 규모는 6만명으로 엘살바도르 군경을 넘어설 정도였다.
부켈레는 당선 직후 이들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초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군경 병력을 확충하고 감옥의 보안을 강화했다. 특히 2022년엔 ‘비상사태’를 선언해 영장 없이도 임의 수색·체포를 가능하도록 했다. 미성년자도 성인과 똑같이 사법 절차를 밟게 했으며 공공장소에서 2명 이상이 모이는 것도 금지했다. 이를 통해 지난 2년간 10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수감됐다. 엘살바도르 성인 인구(약 500만명)의 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최근엔 4만명을 수감할 수 있는 초대형 수감시설을 문을 열었다.
그 결과 엘살바도르의 범죄는 극적으로 개선됐다. 한때 인구 10만명에 100건이 넘던 엘살바도르의 살인 건수는 지난해 2.4건으로 줄었다. 미주 지역에서 캐나다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부켈레가 자신을 ‘마침내 엘살바도르에 평화를 가져온 마술사’라고 표현한 이유다. 갱단에 의해 여동생을 잃은 미겔(가명)은 “예전엔 선한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이제는 악인들이 두려워한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다만 범죄와의 전쟁에서 인권 침해가 횡행했다는 비판도 있다.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용의자’를 수감하는 일은 예사다. 국제엠네스티는 지난해 12월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고문과 학대가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또 다른 인권단체인 크리스토살은 엘살바도르 수감자 중 160명이 사망했는데 혈종 등 고문 흔적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부켈레는 2022년 각료회의에서 “수감자에게도 인권은 있다. 하지만 정직한 사람들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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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비트코인 법정화폐化…이제야 손실 만회
부켈레는 2021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인정하면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비트코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준비자산이자 우수한 통화 네트워크”라며 “비트코인을 보유하면 개발도상국 경제를 명목화폐 인플레이션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2800개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서 부켈레의 경제 정책은 비판받았다. 한때 손실률이 60%가 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수십억달러에 빚을 지고 있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에 일찌감치 우려를 표했다. 엘살바도르는 최근에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승인 등으로 비트코인이 오르면서 1%가량 평가익을 보고 있다. 자신감이 붙은 엘살바도르 정부는 올 1분기 중 비트코인 기반 채권을 발행해 비트코인 추가 구매와 비트코인 채굴 시설 등에 쓸 계획이다. 다만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국민 88%는 지난 한 해 동안 비트코인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답해 법정화폐로선 실용성을 의심받고 있다.
부켈레는 이미지 메이킹에도 능하다. 야구모자와 가죽재킷, 청바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소셜미디어에선 자신에 대한 비판을 독설과 조롱으로 되받는다. 그는 2019년 유엔 총회에선 “인스트그램 사진 몇 장이 이번 총회의 어느 연설보다 영향력이 클 수 있다”고 했다. 부켈레의 변호인으로 일한 베르타 들레온은 “그는 자기 이미지에만 관심이 있다”며 “그는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치 않는다. 소셜네트워크는 그에게 건들릴 수 없는 성역이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최근엔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대통령이나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 다른 라틴아메리카 정상들까지 부켈레의 이미지 메이킹과 ‘스트롱맨 리더십’을 벤치마크하고 있다. ‘부켈리스모’(부켈레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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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켈레 ‘독주’ 계속될까
부켈레가 재집권한 이후 엘살바도르는 어떻게 될까. 외신에선 의회에 무장경찰을 투입하고 비판적인 언론인·학자 등을 국외 추방한 부켈레의 독주가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엘살바도르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미국도 난민 문제 때문에 부켈레를 자극하길 꺼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켈레가 3선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타일러 매티아스 휴먼라이츠워치 연구원은 부켈레를 “라틴아메리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부르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이런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것이 악화하는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ABC에 말했다.
다만 부켈레 앞에 꽃길만 펼쳐진 건 아니다. 정치 평론가 카를로스 페레즈는 “대량 투옥에 기반을 둔 (정치)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엘살바도르 중앙은행장을 지낸 카를로스 아체베도는 “그가 경제에서 국민 기대에 못 미친다면 두 번째 임기는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