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이기도 한 `The left(좌파)`와 `The right(우파)`는 프랑스혁명이라는 급진적 민주주의의 환경에서 생겨났다.
프랑스 제헌의회가 1789∼1791년에 국왕에게 남겨진 권한과 국왕의 거부권 문제를 놓고 분열됐을 때, 급진파인 자코뱅당은 의회 왼쪽에, 보수파인 지롱드당은 오른쪽에 앉았던 데 기원한다. 유럽의 좌파는 그 후 19세기에는 민주주의 운동에, 20세기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일컫는 용어로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좌파는 온건한 사회민주당에서부터 볼셰비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비밀 무장투쟁 옹호론자들에서부터 1968년 이후의 신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력을 아우른다.
소련 붕괴 이후에 출간된 몇 안 되는 좌파 역사서의 하나로서 이 책은 냉전의 두 진영 및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양극단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냉정한 시각에서 좌파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자연스러운 합의나 경제적 번영, 냉전이라는 부정적인 접합제로부터 유기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가 강변한다.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갈등과 투쟁, 봉기와 반란이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19세기 말에 처음 꽃을 피운 사회주의, 페미니즘, 공산주의를 비롯한 여러 급진운동이 다양한 결집을 이루면서 공들여 만들고, 계속 확대하고, 집요하게 지켜온 것이라고 봤다.
유럽의 좌파는 1차대전 이후의 혁명적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옹호했고, 파시즘의 위협과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1945년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는 ‘현대성’이라는 산만하고 공허한 말만을 제시했고 잔존한 사회주의 정당들 역시 이것을 모방해서 대응하는 데 급급했다면서, 실행 가능한 민주적 변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제프일리 지음/유강은 옮김/뿌리와이파리 출판/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