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살(Buy) 집과 살(Live) 집

김은구 기자I 2020.08.19 06:00:00
[정덕현 문화평론가] 최근 들어 집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끌고 있다. MBC ‘구해줘 홈즈’는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다.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연예인들이 팀을 나눠 집을 구해주는 이 프로그램이 최근 화제가 된 건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들을 소개하면서다. 용인이나 동두천, 의정부 등등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자연 풍광 속에 오롯이 폭 안겨 있는 전원주택들은 아마도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330㎡(100평)가 훌쩍 넘는 정원을 가진 2층짜리 전원주택은 널찍한 방들과 마치 전망 좋은 펜션에 앉아 있는 듯한 로망을 자극했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건 이런 으리으리한 저택을 겨우(?) 3억5000~ 4억원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끔 이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바지만, 서울 강남권에서는 33㎡(10평)짜리 원룸의 전세가가 4억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도 신도시 아파트도 99㎡(30평) 남짓 되는 곳의 가격이 적게 잡아도 5억~6억원은 호가한다. 그러니 여유 있게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정원과 넉넉한 방이 있어 가족들이 다 모여도 좋을 것 같은 전원주택이 그 정도의 가격이라는 사실에 로망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일요일 밤에 이 프로그램을 보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해 그 전원주택을 소재로 수다를 떠는 직장인들은 쉽사리 살던 아파트를 떠날 수 없는 현실을 발견한다.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며, 직장 출퇴근도 큰 문제다. 게다가 도시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부대시설과 문화시설들까지 떠올리면 ‘로망은 로망일 뿐’이라는 현실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로망과 현실의 괴리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가 집을 보는 관점은 살(Buy) 집과 살(Live) 집으로 나눠진다. 집을 사고 나서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고 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얼마나 올랐냐”는 말이다. 아예 부동산을 사업 혹은 투기로 하는 이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집을 구매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그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집을 살 때부터 그 곳이 가격이 오를 것인가를 여러 요인들을 파악해 염두에 둔다. 집은 이 과정에서 누리고 사는 공간보다는 투자의 대상이 된다.

물론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데는 삶의 편의성 또한 중요한 요인이긴 하다. 역세권이니 학세권이니 하는 말들은 그래서 삶의 편의성이나 효율성을 따져서 가치매김 되는 집을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숲세권(숲이 있는)’, ‘공세권(숲, 공원 같은 주거환경을 갖춘)’ 같은 용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아파트에도 기능이나 효율적인 요인들 이외에 삶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요소들 역시 투자가치로 환산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최근 부동산 이슈는 당의 지지율을 요동치게 만들 정도로 뜨거워졌다. 새로운 정권 이래 다양한 부동산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강남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지역 간에, 또 집을 가진 이들과 못 가진 이들 사이의 양극화는 더 골이 깊어졌다. 정책 결정권자들조차 요지에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래서 최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지른 이유에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공공연히 거론된다.

땅과 집에 대한 애착이 큰 우리에게 아파트 한 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건 단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적인 의미 그 이상을 내포한다. 강남이냐 강북이냐를 따지고 평수가 몇 평이냐를 따져 그 사람의 성공을 가치평가 하기도 한다. 그래서 민감하다. 부동산 민심이 정치에 있어서 중대한 사안이 되는 건 그래서다. 그런데 우리가 누리고 살아야 하는 집이, 반드시 사야만 그 사람의 위치나 가치를 증명하고 그 투자로 더더욱 부자가 될 수 있다 여겨지는 그런 사회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그만큼 우리네 삶이 집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조차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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