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기술력만을 믿고 진입하기보다는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허수복 디디에이치 대표는 “구강암 같은 중대 질환도 아닌 단순한 충치 치료의 허가를 한국 식약처에서 받는 데 4년이 걸렸다”면서 “하지만 중국은 한국에서 허가를 받았다고 하니, 올 상반기까지 6개월 내로 패스트트랙으로 허가를 해주겠다고 한다”고 중국 진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중국 정부는 전문의가 아닌 간호사도 경력만 쌓으면 치과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떨어진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도움으로 중국 산동성 제남시와 협업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중국 정부는 허가뿐만 아니라 역외 펀드를 조성해 우리 기업에 대한 투자도 지원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커머스 사업을 하는 스카이랩은 최근 칭다오에 지사를 설립했다. 스카이랩은 한국에서 중국 제품을 소싱하기보다는 중국을 거점으로 삼아 커머스 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진출했다.
박종일 스카이랩 대표는 “중국 기업들은 과거에는 한국 제품의 고객이었지만, 이제는 제조 수준이 높아지고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한국의 경쟁자가 됐다”며 “한국 기업은 중국 커머스 플랫폼과 경쟁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커머스를 활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저희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지사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중국 알리바바그룹과 협력해 중국 커머스를 활용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또한, 네이버페이는 지난달 중국 최대 간편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와 손잡고 중국 핀테크 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번 연동을 계기로 네이버는 위챗페이, 유니온페이, 알리페이플러스 등 3대 QR 결제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유일한 국내 간편결제사가 됐다.
|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IP(지적재산권) 활용 콘텐츠 산업에서도 한동안 막혔던 중국 시장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한국 게임 3종에 대한 서비스 허가인 ‘외자판호’를 발급하며, 2017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로 판호가 허가됐다. 이는 중국에서 ‘사드 보복’과 ‘한한령’으로 막혔던 판호 활로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지난해 5월 중국 출시 직후 애플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서 동시에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연말까지 약 1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모바일 게임 ‘고양이와 스프’로 지난해 판호를 받은 네오위즈 관계자는 “중국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며, 게임에 대한 반응이 좋다”며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철저한 분석을 통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라비티의 게임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지난해 3월 중국 출시 첫날부터 전체 앱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그라비티 관계자는 “중국 사용자에 맞춰 현지화 작업을 진행하고, 단오절 등 중국의 특성에 맞춘 광고와 마케팅을 펼친 결과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윤호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문위원은 “중국은 테크놀로지 기반 콘텐츠(게임, 실감 콘텐츠 등)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지만, 크리에이티브 기반 콘텐츠(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에서는 한국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며, “중국 시장은 규제와 제한이 많지만, 성공적으로 유통되기만 한다면 엄청난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중국 MZ세대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콘텐츠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
SAMG엔터(419530)의 ‘사랑의 하츄핑’은 중국 시장에 개봉해서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확보했다. 현지에서는 영화외에 ‘캐치!티니핑’ 시리즈가 방영되면서 중국 내 IP(지적재산권) 인지도가 오르고 있다. 덕분에 중국시장에서 티니핑 관련 MD 및 라이선스 매출도 매년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캐릭터 IP 분야에서는 잔망루피와 몰티즈가 중국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후 다양한 IP 콜래보 전략을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2023년부터 작년까지 상해, 청두, 우한 등에서 진행된 몰티즈 팝업스토어는 방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작년 10월 중국 음악 스트리핑 플랫폼 왕이윈뮤직과 K팝 유통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에 카카오 소속의 아이유, FT아일랜드, 엔플라잉 등 카카오 소속 아티스트의 음원이 왕이윈뮤직을 통해 정식 서비스 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수출을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력만으로 진출하기보다는 현지 업체와의 협력과 철저한 현지화가 필수적이다. 황재원 중국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장은 “중국 지방정부는 기술력이 있는 한국 하이테크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그러나 기술을 뺏기지 않도록 기술 보호 장치와 이윤 배분 방안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을 늘리려면 한중 FTA 서비스 및 투자 부문 개방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중 양국은 2015년 FTA를 발효했지만, 서비스·투자 부문 개방에 대해서는 수년간 협의가 지연됐고, 작년 후속 협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서비스 부문이 개방되면 문화, IT, 클라우드, 헬스케어, 법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중 교역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 이현태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에서는 이제 밀리고 있으니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수출 전략을 짜야 한다”며 “한중 관계는 정치적 사안을 제쳐두고, 전면적인 비즈니스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