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현직 경찰관이 관내 상인과 짬짜미로 온누리 상품권 ‘현금깡’을 통해 수천 만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사실이 경찰 자체 감찰로 적발됐다. 그러나 서울청은 “사익을 챙기지 않았다”는 해당 경관의 해명만 믿고 ‘주의’조치만 내린 채 사건을 마무리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2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서울 일선경찰서 소속 A(58)경감은 해당서에 첫 부임한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지구대 직원들을 시켜 특별할인 기간 1인당 30만원 상당의 온누리 상품권을 2~5차례 구매토록 했다. A경감은 할인 기간 액면가 대비 10%싸게 구입한 상품권을 관내 상인 B씨에게 넘겼고 B씨는 금융기관을 통해 원래 가격으로 환전한 뒤 남은 차액을 A경감과 반반씩 챙겼다.
10만원 어치를 구입할 경우 1만원의 차익을 남겨 5000원씩 나눠 갖는 식이다. 해당 기간 온누리 상품권 할인 기간은 설과 추석 등 총 4차례였다.
이들의 비위 행위는 관내 다른 상인 등의 제보로 덜미가 잡혔다. 사건을 접수한 해당서는 자체 감찰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청에 보고,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의 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한 딱한 사정을 듣고 A경감이 지난 설 연휴 때 딱 한 번 수술비 2000만원을 만들어준 게 전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서울청은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A경감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B씨가 남편 수술비가 부족해 A경감이 만들어 줬을 뿐이라고 진술했고 A경감이 사익을 챙긴 부분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주의 조치를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계좌추적 등 추가 조사 여부를 묻자 “자세한 내용은 규정상 알려주기 어렵다”고만 했다. A경감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말하기 어렵다”며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 중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한 뒤로는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수천 만원 상당의 ‘현금깡’을 해 줬다는 말만 믿고 사건을 매듭지은 것을 두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재래시장 활성화법)에 따라 B씨가 상품권을 현금화 한 자체는 법적 문제가 없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영리행위를 도운 셈이기 때문이다.
재래시장 활성법에 따르면 가맹점 상인을 제외한 구입자들은 액면 금액의 60% 이상을 구매한 경우 남은 금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반면 가맹점 상인은 상품권을 한도 1000만원 내에서 환전 가맹점을 통해 자유롭게 현금화 할 수 있다. 한도를 초과할 경우 직접 금융기관을 통해 현금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현금화 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따라 B씨의 행위 자체는 법적 문제가 없지만, A경감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금품을 받거나 나눠 가진 사실 자체만으로 뇌물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부정한 청탁과 관련해 주어진 뇌물임을 알면서도 금품을 받기 위한 중개 역할을 하고 그 금품의 일부를 취득하였다면 경찰공무원으로서 성실의무 및 청렴의무에 크게 위배되는 것으로 충분히 파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최근 충북지방경찰청 소속 A경위는 지난 10년간 노인정과 공원 등을 돌며 무료 공연을 해 청렴 경찰관에 선정됐을 정도로 모범 경찰이었지만 봉사활동 협찬 명목으로 금품을 받아 파면 조치된 일도 있었다.
이승태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대표 변호사는 “공무원이 부하 직원들을 동원해 관내 상인과 짜고 영리행위를 한 것으로 온누리 상품권 환전을 따로 처벌할 법률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품위 유지 위반’으로 충분히 징계나 파면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누리 상품권
전통 시장의 수요 진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난 2009년 7월부터 발행했다. 5000원권과 1만원권 두 종류로 발행되며 전국의 모든 전통시장 및 온누리 상품권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해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발행 및 전통시장 관리 감독 등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청은 침체된 전통시장 경기 활성화를 위해 명절 전후 ‘특별할인 기간’을 지정해 운영 중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6월 메르스 여파로 경기가 침체됐을 때도 특별할인 기간을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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